[USA선택2000]민주당 고어-리버맨 대선후보 공식지명

  • 입력 2000년 8월 17일 16시 40분


미국 민주당은 16일 전당대회에서 앨 고어 부통령과 조셉 리버맨 상원의원을 11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로 공식 지명했다.

부인 하사다의 소개에 이어 연단에 오른 리버맨은 부통령 후보 수락연설을 "고어 부통령이 나를 러닝 메이트로 지명하기 전에 이미 나는 아내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며 먼저 가족애를 과시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자신의 눈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눈을 통해 조국을 들여다보아야 한다"며 "종교적 박해를 피해 중부 유럽에서 이곳에 이민 온 할머니와 고아원에서 성장한 뒤 트럭 운전사로 일하며 근로와 책임의 중요성을 자식들에게 가르쳤던 아버지의 눈에 비친 미국은 위대한 나라였다" 고 회고했다.

그가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말했던 '뉴 프론티어'는 우리 앞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가슴 속에 있다. 이제는 우리 가슴 속에 있는 인종과 성별 등에 따른 차별의 벽을 부숴야 할 때"라고 역설하자 청중은 그의 애칭인 '조'를 연호하며 기립박수로 공감을 표시했다.

리버맨 후보는 민주당이 재집권하면 의료 교육 환경 등의 정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겠다며 공화당과 차별되는 정강정책을 강조했다. 유대계로서는 최초로 부통령 후보가 된 때문인지 리버맨은 시종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유대계로 보이는 일부 대의원들은 청중의 박수가 이어지자 감격스러운 듯 눈물을 글썽였다.

그러나 이날 전당대회의 하이라이트는 리버맨의 부통령 후보 수락연설이 아니었다. 고어가 준비한 '깜짝 쇼'가 기다리고 있었다.

리버맨이 퇴장한 뒤 고어 부통령의 딸 카레나(27)가 등단했다. 고어의 특급 참모로 젊은 층 유권자들에 대한 공략과 고어의 패션 등에 관해 조언하고 있는 그녀는 아빠의 인간적 면모를 부각시켰다.

"어렸을 때 눈으로 이글루를 만든 뒤 그 안에 옷을 겹겹이 바닥에 쌓고 자겠다고 한 적이 있었어요. 얼마 뒤 추위를 참지 못하고 입술이 파랗게 돼 집안에 들어가자 아빠는 북극 탐험대를 맞듯 따뜻하게 저를 안아주셨어요. 결코 저의 '거창한 계획'을 일소에 부치시지는 않으셨죠. 아빠는 언제나 우리를 믿으셨으니까요."

그녀는 이어 "아빠를 미국의 차기 대통령 후보로 지명할 것을 재청(再請)한다"며 연설을 마쳤다.

그때였다. 고어 부통령이 활짝 웃으며 연단에 나와 딸을 포옹했다. 그는 중서부 지방의 유세를 마치고 이날 낮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지만 전당대회장에는 17일밤 후보수락연설에 맞춰 나오는 것으로 스케쥴이 잡혀 있었다.

고어 부통령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잠시 어리둥절하던 청중은 곧 장내가 떠나갈 듯한 박수와 환호로 그를 환영했다. 대회장은 한 순간에 폭발할 듯 뜨겁게 달아올랐다. 고어 부녀는 다정스럽게 연단을 돌며 청중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를 보냈다.

청중의 열광이 계속되는 가운데 고어 부통령은 딸과 함께 자리를 떴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몇분이나 이어졌지만 그는 '커튼 콜'에 끝내 응하지 않았다. 그가 뭔가 한마디 하지 않을까 기대했던 청중들의 박수는 17일 후보수락연설을 기다리며 잦아들었다.

<로스앤젤레스=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리버맨은 누구?▼

앨 고어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11월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조지프 리버맨 상원의원은 미 역사상 최초의 유대계 부통령후보. 그가 러닝메이트로 결정되자 리버맨 자신마저 고어의 결정을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정통 유대교 신자인 리버맨은 빌 클린턴 대통령의 성추문 사건을 민주당 의원으로서는 가장 먼저 비난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보수와 진보라는 '양날개'를 겸비한 민주당내 대표적인 중도주의자로 꼽힌다. 국가미사일방위체제(NMD) 구축, 사회보장제도의 부분 민영화 등 공화당 정책과 비슷한 입장을 취하면서도 무역자유화 낙태 총기규제 등에서는 민주당 노선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는 두가지 색깔을 지녔지만 철저할 만큼 금욕적인 생활태도로 인해 기회주의자라기 보다는 소신파로 인정받고 있다. 안식일에는 차를 타지 않고 걸어다니고 일도 하지 않는 유대교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뒤 안식일에는 유세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예일대 법대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뒤 코네티컷주 상원의원(70∼80년) 주검찰총장(83∼88년)을 지냈고 88년 연방 상원으로 중앙 정치무대에 진출했다.

<신치영기자>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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