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월드]유럽에 新나치 광풍

  • 입력 2000년 8월 10일 18시 55분


《나치 광풍이 유럽을 휩쓸고 있다. 독일을 중심으로 되살아난 나치 망령은 최근 한달 새 아시아계와 흑인, 유대계에 대한 테러로 이어지면서 유럽의 외국계를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극우파 배후에는 인종차별주의를 노골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극우정당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따라 각국 정부는 극우파와의 전면전을 선포하고 나섰다.》

▼반발하는 테러▼

5일 엑스포 행사가 열리고 있는 독일 하노버에서는 외국인 추방을 주장하는 신나치주의자들이 경찰과 충돌했다. 경찰은 시위대 243명을 체포했으며 이 중 14명은 구속했다. 80년대부터 이어지고 있는 연례행사를 마친 신나치주의자들은 경찰에 화염병과 돌을 던지고 도로시설물에 불을 질러 내전을 방불케 하는 폭력사태를 일으켰다.

지난달 27일에는 뒤셀도르프 철도역에 폭탄이 터져 기차를 기다리던 유대계 등 외국인 25명이 부상했다. 극우정당인 민족민주당(NPD)소속 소년 3명이 에어푸르트 난민수용소에 화염병을 던져 외국인 소녀가 화상을 입기도 했다. 바흐의 고향인 아이제나흐와 데사우에서도 아프리카인 5명이 스킨헤드족한테 폭행을 당했다. 올들어 독일에서 유색인종을 상대로 일어난 폭력과 폭탄테러는 10여건에 이른다.

4월 러시아 볼고그라드에서는 14명의 인도 유학생이 습격당하는 등 주로 아시아계와 흑인 등 유색인종이 주된 테러의 표적이 되고 있다. 6월 영국에 불법 입국하려던 중국인 58명이 트럭 컨테이너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은 유럽의 극우파를 자극하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도 있다.

▼극우파 실태▼

극우파는 유럽 국가 중 과거 나치의 인종차별정책 영향이 많이 남아 있는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비롯해 사회주의 몰락 후 경제상태가 좋지 않은 러시아 폴란드 등지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독일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독일 내 극우파는 약 7만명. 97년 4만8000명에서 3년 사이에 약 46%나 늘어났다. 이들이 저지른 범죄는 지난해 9000여건. 슈피겔지는 최신호에서 “극우파에 의한 외국인 테러를 근절하지 못하면 제2의 나치제국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96년에 창설된 극우정당 NPD 당원 6000명이 각종 폭력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외국계에 대한 폭력사건이 별로 없던 뮌헨과 슈투트가르트 등 독일 남부 도시도 이 같은 뒤숭숭한 분위기 때문에 저녁이 되면 외국인들이 바깥출입을 삼가고 있는 실정.

지난달에는 좌파 정치인과 유대계의 이름 주소 사진을 공개하면서 이들에 대한 테러를 선동하는 인터넷 사이트까지 등장해 외국계의 공포를 더해주고 있다.

파울 슈피겔 독일 유대인협회 회장은 “유대계에 대한 위협이 중단되지 않으면 8만5000명의 유대계는 독일을 떠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극우파 활동이 약했던 스위스에서도 최근 무장 극우파가 날뛰기 시작해 스위스 연방경찰이 이들과 전면전을 선포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만 신나치 단체가 40개에 이른다. 특히 러시아민족연합(RNE)은 회원이 5만여명에 이른다. 이들은 ‘러시아인의 러시아 건설’을 주장하며 외국인 추방운동을 벌이며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각국 대책▼

극우파가 가장 기승을 부리고 있는 독일에서는 정치권과 재계가 한 목소리로 극우정당의 불법화를 촉구하고 있다. 독일 내무부는 10일 극우파 정당 NPD의 불법화를 논의하기 위한 최초의 연방정부 차원의 고위급 실무회담을 11일 열어 법률검토 작업을 벌인 뒤 10월 중순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휴가지인 스페인 마요르카에서 9일 급거 귀국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극우파의 활동을 제약하겠다”고 밝혔다. 슈뢰더총리는 “극우파가 날뛰어 마치 나치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며 “정당 사회단체 교회와 힘을 모아 극우파 활동을 봉쇄하겠다”고 선언했다. 독일정부는 이에 따라 극우파가 운영하는 웹사이트를 단속하고 국경수비대를 동원, 극우파 테러에 강경 대처키로 했다.

러시아와 벨기에는 경찰 내에 신나치파 전담부서를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늘어나는 외국인 불법이민에 대한 반감이 뿌리깊어 유럽 내 극우파 망령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백경학기자>stern100@donga.com

●유럽 극우파 관련 일지●

1998. 4. 28 독일민족당(DVU)과 NPD(민족주의당), 독일 극우연합 구성

<1999년>

△1.24 장 마리 르팽, 프랑스 국민전선(FN) 명예총재 취임

△9.30 노벨상 작가 귄터 그라스 반나치운동 선언

△10.3 오스트리아 총선, 극우 자유당 연정 참여

<2000년>

△1.24 러시아 총선, 극우파 약진(8.2%)

△2.21 유럽 전역에서 오스트리아 자유당의 연정 반대시위

△2.29 외르크 하이더, 오스트리아 자유당수 사임

△3.9 NPD, 자아브뤼켄 나치 만행전시장에 폭탄테러

△3.13 NPD, 베를린에서 대규모 외국계 규탄 시위

유럽 극우파 관련 일지>

1998. 4. 28 독일민족당(DVU)과 NPD(민족주의당), 독일 극우연합 구성

△7.27 뒤셀도르프 철도역 폭탄테러

△8.9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총리, 극우파 봉쇄 발표

▼실업률 17%대 舊동독 불만고조▼

실업률과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발생 건수는 비례한다? 9일 독일 노동통계청이 발표한 독일의 7월중 실업률 통계는 이같은 가설을 뒷받침해준다. 독일 전체 실업률은 6월 9.6%에서 7월 9.5%로 떨어졌으나 구 동독지역 실업률은 6월 17.3%에서 7월 17.4%로 상승했다.

독일 경제의 90%를 떠맡고 있는 서독지역의 실업률은 98년부터 하락세로 접어들어 7월에는 동독지역의 절반도 안되는 7.7%까지 떨어졌으나 동독지역의 실업률은 지난해 초부터 다시 상승곡선을 타고 있다.

사회학자들은 에어푸르트 난민수용소 화염병 투척사건 등 최근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소수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일련의 공격사건들이 구 동독 5개 주에 집중되고 있는 현상이 이 지역의 고실업률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올들어 동독지역에서만 4명이 소수 민족에 대한 공격으로 살해됐으며 스킨헤드족과 신나치 등 극우파의 활동이 동독지역에서 활발한 것도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극우파 활동 감시기관인 독일 헌법보호소의 한스 게르트 랑에 대변인은 “사람들은 실업의 공포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불행의 원인을 돌릴 희생양을 찾으려고 한다”며 동독지역의 경우 소수민족이 그 대상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독일에 거주하는 700만 외국계중 극소수만이 동독지역에서 살고 있는데도 적지않은 동독인들이 외국인이 일자리를 빼앗았다고 여긴다. 이로 인해 동독지역의 인구는 전체의 20%에 불과하나 매년 독일에서 발생하는 인종차별범죄의 절반이 동독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파리〓김세원특파원>clai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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