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현장21]중국당국 중국인 관중 2명구속

  • 입력 2000년 8월 9일 21시 43분


지난 달 28일 중국 베이징 궁런경기장에서 열린 한중 축구국가대표 정기평가전 당시 한국인 관중들에게는 무슨일이 있었을까.

8월 사이버 세상에서는 이 문제가 한여름 날씨보다도 더 뜨겁게 달아 오르고 있다.

특히 7일밤 연세대 홈페이지에 일본의 스포츠신문기자가 썼다는 중국 관중들의 한국관중 집단폭행사건에 관한 글이 올라 오면서 네티즌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있다.

동아닷컴 특별취재팀의 확인 결과 '일본 기사'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문제의 '기사' 중 한국관중들이 집단 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은 부분적으로는 사실로 확인 됐다.

폭행당한 것으로 확인된 사람은 중국으로 이민간 한국인 고교생 3명이며 이중 2명은 크게 다쳤다. 이들은 자신들 외에도 유학생 등 몇몇 한국인이 심하게 폭행 당했다고 증언하고 있으나 11일 오후 현재 피해자는 더이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와관련 중국당국은 14일 한국관중을 폭행한 것으로 드러난 중국인 관중 2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과▼

현재 대부분의 언론, 스포츠 관련 인터넷 사이트의 게시판을 도배하고 있는 이른바'중국 훌리건'논란은 경기를 관람한 한 중국 유학생이 지난달 29일 PC통신에 '중국에서 겪은 중국인들의 난동'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국내 PC통신 게시판에 올려진 이글은 순식간에 인터넷 사이트로 옮겨졌고, 몇편의 다른 내용의 글도 함께 알려지기 시작했다.

국내뿐 아니라 주중 한국대사관의 홈페이지 '영사민원접수'란에도 29일 비슷한 내용의 글이 올라오면서 교민의 항의가 빗발쳤다.

그러나 이후 더 이상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고 사실여부도 확인되지 않아 네티즌의 관심은 멀어져갔다.

8월 7일 밤부터 8일 새벽 사이, 수천 네티즌들이 돌연 이 사건과 관련해 주중국한국대사관, 언론사 등의 홈페이지에 분노에 가득한 글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중국 훌리건' 사건의 재폭발 원인은 바로 7일 오후 9시 53분에 등록된 연세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의 글.

'일본 닛칸스포츠 신문에 난…한중전…관련기사[퍼옴]'이라는 제목의 글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던 네티즌의 감정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asura'라는 아이디의 네티즌이 올린 이 글은, 9일 오후 현재 무려 550건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 글은 각 대학의 홈페이지를 시작으로 대부분의 인터넷 사이트를 도배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일본기사는 존재하지 않는 것▼

닛칸스포츠 모리야마기자의 칼럼 형식으로 돼 있는 이 글은 "중국관중들은 이영표(24·안양LG) 선수가 한골을 성공시킨 뒤 환호하는 한국응원단을 향해 쓰레기 봉지 물병 오물등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한국관중들에게 발길질은 예사였고 태극기를 빼앗아 발로 뭉개기까지 했다. 1대0 한국 승리로 경기가 끝난뒤 서둘러 경기장을 빠져 나가는 한국응원단을 수천명의 중국인들이 에워싸고 발길질 주먹질을 했다. 제일 충격적인 것은 여자의 머리를 붙잡고 땅으로 끌고 가슴을 발로 짓누르는 등 눈뜨고 보기 힘든 참혹한 모습이었다”는 게 요지다.

이글이 특히 네티즌을 흥분시킨 것은 '한국 정부의 주권상실', '한국언론의 보도통제', '한국여성에 대한 집단폭행' 등의 자극적인 내용 때문이다.

그러나 동아일보 심규선 도쿄특파원의 현지 확인 결과 닛칸 스포츠에는 모리야마라는 기자가 없으며 닛칸스포츠는 한중전 당시 중국에 취재 기자를 보내지 않았고 관중 난동사건에 관한 기사를 보도한 사실도 없다는 것.

▼폭행상황▼

집단폭행을 당한 것으로 확인된 한국인은 모두 부모를 따라 중국으로 이민간 교포학생들인 박재영(17.난카이고교.텐진 거주) 장기호(17.국제고교.텐진 거주) 이상현(18.난카이고교.텐진거주) 등 3명이다.

이들중 박군은 눈을 심하게 다쳐 현재까지도 통원 치료를 받고 있으며 장군은 얼굴과 몸을 밟혀 몸에 멍이 들고 찰과상을 입었다.이군도 폭행을 당했으나 외상은 없는 상태다.

이들은 텐진에 사는 친구4명과 함께 베이징으로 가 다른 친구 3명,북경대 유학생 1명 등 모두 11명이 일행이 되어 축구장을 찾았다.붉은 악마 응원단과는 떨어진 곳에 다른 한국인등 30명 가량이 함께 응원을 했다.

경기도중 중국인 관중들이 각목 물병 오물등을 던지고 심한 욕설을 했지만 관중석에서 심각한 폭행은 없었다.

경기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는 도중 일행이 승리의 기쁨에 북을 치자 중국인 관중들이 흥분해 폭행이 시작됐다.이들 일행은 흩어져 달아났으나 일부가 중국인 관중들에 둘러싸여 폭행을 당했다.

박군 등은 이과정에서 북경대 유학생과 여학생 등 몇몇 한국인이 심하게 폭행을 당했다고 증언하고 있으나 부상정도와 실명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박군은 중국관객들을 피해 달아 나다 PC방에서 hongdeema란 이름으로 국내와 중국 일부 사이트에 글을 올렸다.

이밖에도 각 인터넷 사이트에는 "4천명정도가 우리 8명을 둘러싸고 겁을 주었다. 주먹으로 얼굴을 맞아 안경이 깨지고 깃발에 허리를 찍혔다. 돌도 날라오고, 난 벽돌이 날라오는 것을 겨우 피했다."<정우영(china), 7월 29일>

"공포에 질려 아무런 말도 없이 서있는 여학생을 밀어서 넘어지게 하고 무릎과 팔꿈치 배에서 피를 흘리던 여학생은 그냥 울 수 밖에 없었다."<이동윤(deri),8월 3일>는 등의 내용이 있으나 현재까지 이들과의 직접통화나 메일교환은 이뤄지지 못했다.

이들이 폭행을 당한 사실이 국내 언론에 보도되지 않아 네티즌들만 분노하는 상황에서 급기야 일본 스포츠신문 헤프닝까지 생겨나게 된 것이다.

▼한국 기자들은 어디에▼

당시 한국기자들은 경기장내 기사 송고시설이 없어 호텔로 철수, TV를 통해 경기를 보고 송고하는 바람에 현장을 목격하지 못했다.

28일 한중전을 취재한 4개 스포츠신문 축구기자들은 모두 폭행사건에 관한 소문을 중국현지 혹은 서울에 도착해 들었으나 현장에 없어 확인할 길이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A사 기자는 이와 관련해 "28일 중국측이 구장 내에 전화선 등 취재여건을 마련해주지 않아 한국기자들은 전반전만 관람하고 나와 호텔에서 기사를 전송했다"며 "서울에 도착해 경기종료후 폭행사건 소문 얘기를 들었으나 당시 현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확인이 어렵다"고 말했다.

B사 기자는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28일 밤 전해들었지만 사실 확인은 못했다"며 "들은 바에 의하면 당시 상황이 경기 종료 후라 사실이라고 해도 이를 목격한 한국기자는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C사 기자도 "28일 저녁 마찰이 있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당시 현장에 없었으므로 확인 취재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D사 기자 역시 "얘기는 들었지만 현재 알려진 것만큼 심각한 수준의 폭행은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한다"며 "라이벌 국가간 경기때 흔히 있는 마찰 정도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당시 현장 상황을 얘기해 줄 한국기자는 아무도 없었다.

▼중국 관중의 관전 태도는 문제▼

경기를 관람했던 중국현지 한국인들은 '비일비재한 일'이라는 반응과 함께 이번 일로 인한 양국 국민감정악화를 우려하는 분위기였다.

재중국한국인회 종철수 사무국장은 "야유를 하고 깡통과 돌을 던지는 등의 행동은 중국인들이 중국 프로축구를 관람할 때 손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현장에 있었던 '붉은악마' 중국응원단 단장 유영훈씨는 "당시 한국응원단은 좌석배치상 여러 군데 떨어져 앉아 다른 쪽에 앉은 한국사람들의 상황은 알 수 없었다"며 "당시 응원현장에 있긴 했지만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몰랐고 서울에 와서 이런 내용을 접했다"고 말했다.

유씨는 또 "응원 온 현지 유학생들과는 경기장 앞에서 헤어졌기 때문에 그들이 집에 돌아가는 길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덧붙여 유씨는 "당시 붉은악마 응원단도 중국인들 사이에서 응원했기 때문에 욕설을 듣거나 물병을 맞는 일은 있었다"며 "중국의 낙후된 응원문화를 볼 때 폭행사건의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순 없다"고 추정했다.

유씨는 또 '붉은악마' 응원단은 작년 상해에서의 경기때 응원경험이 있어 중국의 분위기를 알기 때문에 일부러 붉은 옷을 입지 않고 응원도 자제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해서 중국인들과 마찰이 없었다고 밝혔다.

▼대사관과 한인회의 조치▼

주중국 한국대사관은 7월 31일 홈페이지 게시판에 "7·28 저녁 북경공인운동장에서 개최된 한중축구정기전 종료후 중국축구팬들이 응원나온 아국인 축구팬들을 향해 집단 폭행을 하고 욕설을 한데 대해 당관은 7·31부로 중국 외교부에 유감을 표하는 서한을 송부하고 향후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또한 대사관측과 재중국한국인회측은 홈페이지에 전화번호와 팩스, 이메일주소를 남기고 피해사례를 접수하고 있으니 신고를 바란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박노완(주중국 한국대사관)영사는 "경기 후 집단적인 구타가 이루어졌다는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피해접수를 받고 있으나 지금까지 한건이 신고됐을 뿐"이라며 "조사가 끝나는대로 다시 중국정부에 항의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사관에 신고한 사람은 장기호군의 아버지 장좌환씨로 아들과 친구 박재영군에 관한 것이었다.이상현군은 외상이 없어 신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국당국 중국인 2명 구속▼

중국 외교부는 14일 한중 축구 평가전 때 중국관중의 한국관중 폭행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한국인 관중 김모씨를 폭행한 중국인 관중 2명을 베이징시 공안국이 구속해 수사중이며 법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는 당시 김씨가 구타를 당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허리부분에 찰과상을 입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그러나 김씨의 정확한 신원과 구타 상황 등은 밝히지 않았다.

중국외교부는 또 장기호군 한국인 고교생의 집단폭행 사건에 대해서도 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중국당국은 앞으로 한중축구 경기 때 경비를 강화하는 등 한국관중의 안전이 보장되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동아닷컴 특별취재팀> gaegoo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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