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준칼럼]잦은 개각 막는 제도 필요하다

  • 입력 2000년 8월 9일 18시 27분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에 관해 읽다가 새삼스레 놀란 일이 몇 개 있었다. 첫째, 집에 돌아온 아버지가 벚나무가 베어진 것을 보고 누가 잘랐느냐고 역정을 냈을 때 어린 조지가 “제가 잘랐습니다”라고 시인하자 “너의 정직을 보니 나무 잘린 것은 조금도 아깝지 않다”며 기뻐했다는 일화가 국부(國父)를 미화하고 싶어한 한 전기작가의 조작이었다는 사실이다. 둘째, 그러나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첫 임기 4년 동안 개각을 한 차례도 하지 않았으며 두 번째 임기 시작 때도 첫 임기 장관들을 그대로 임명했다는 사실이다.

그 때도 장관하겠다는 정치인들이 적지 않았고 대통령으로서 지난날 신세진 사람에게 장관직으로 보상해 주고 싶은 경우가 없지 않았을 터인데도 워싱턴이 내각의 안정성과 정책의 일관성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초대 대통령이 세워 놓은 이 전통은 그 뒤 계속 이어져, 200여년 뒤인 오늘날 클린턴 대통령 8년의 경우도 비슷하다. 대통령에 대해 때때로 반기를 드는 재닛 리노조차 시작부터 지금까지 법무장관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다.

미국의 대통령은 흔히 ‘선출된 황제’로 불린다. 권한이 엄청나게 크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통령직을 깊이 연구한 정치학자 클린턴 로시터 교수는 “칭기즈칸이나 나폴레옹이 살아나서 미국의 대통령을 보면 그 막강한 권력에 침을 흘리며 부러워할 것”이라고 썼다. 이처럼 힘이 센 미국의 대통령이 어째서 장관을 함부로 갈아치우지 못할까? 이 물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대답이 나와 있다.

유능한 인재들은 이미 대기업들이나 법률회사들에 가 있는데 거기서 받는 봉급이 장관 봉급보다 다섯 여섯 배, 심지어 열 배가 넘는 경우가 많아 장관직을 탐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설명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가 하면, 대통령 선거운동 때부터 자신과 호흡을 같이하고 자신과 운명을 같이할 사람들을 엄격히 가려 뽑아 장관에 임명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또 하나의 설명이다.

그러나 그것들보다 더 중요한 설명에 주목하게 된다. 상원의 인사청문회 제도가 대통령의 잦은 개각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는 설명이다. 미국은 대통령중심제의 전형적 나라이지만 균형과 견제를 생명으로 여기는 삼권분립의 원칙이 엄격히 지켜지고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행정고위직 임명은 상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쉽게 말해, 개각을 하는 경우 상원의 까다로운 인사청문회를 거쳐 인준을 얻어야 한다. 개각을 자주 할 때 상원은 대통령이 권한을 남용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인준을 거부할 것이다.

우리의 경우, 특히 지난 80년대 말 이후 10년 넘게 개각이 잦다. 김영삼 정부의 경우, 임기 60개월에 국무총리가 6명, 경제부총리가 7명, 통일부총리가 6명이 나왔으니 어떻게 정책의 일관성이 지켜질 수 있었겠는가. 현 정부의 경우도 비슷하다. 임기가 이제 절반에 접근한 시점에서 대부분의 부서가 이미 서너 명의 장관을 경험했다.

그러면 왜 우리나라에선 이렇게 개각이 잦았을까? 큰 사고가 났을 때, 또는 정국이 꼬였을 때 총리와 장관에게 직접적이며 일차적인 책임이 없는데도 개각을 그 효과여부에 관계없이 국면전환의 수단으로 쓰는 타성이 큰 이유지만, 경계해야 할 것은 장관직을 전리품으로 여겨 신세진 사람에게 장관직으로 보상하려는, 그리고 대통령선거운동에 대한 기여를 장관직으로 보상받으려는 집권세력 내부의 마음가짐이다.

집권 후반기에 가면 이러한 분위기가 더욱 기승을 부려 “이 때 아니면 언제 시켜주나?”와 “이 때 아니면 언제 해보나?”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개각을 빈번하게 만든다. 따라서 장기적인 정책은 고사하고 중기적인 정책, 아니 단기적인 정책도 제대로 수립되고 집행되기 어려워진다.

이번 개각에서는 정치인들이 거의 배제되고 전문가들이 대거 기용돼 ‘보아주기’와 ‘끼어들기’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잦은 개각의 폐해를 잊고 앞으로도 연례행사처럼 개각이 쉽게 되풀이된다면, 대통령의 장관임명권 남용을 국회가 제도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장치에 대해 공감대가 서지 않을까? 부디 이번 개각이 김대중 대통령으로서는 사실상 마지막 개각이 되기 바란다.(미국 워싱턴DC에서)

김학준(본사 편집논설고문·인천대총장)

h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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