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신일/전국규모 학력고사 실시를

  • 입력 2000년 8월 1일 18시 39분


고등학교에서 ‘성적 올려주기’가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다는 보도는 대단히 충격적이다. 최근의 한 조사에 의하면 대학입시 내신성적을 높이기 위하여 많은 학교에서 교사들이 시험을 쉽게 출제한다는 것이다. 2002학년도부터 수능성적의 변별력을 낮추고 학생부 성적을 절대평가제로 적용하는 새로운 대학입시제도에 대한 각 학교의 대비책인 셈이다. 이것은 교육의 근본을 무너뜨리는 교육 파괴 행위이다.

지난해 일부 고등학교가 이런 파렴치한 행위를 저질러 엄청난 사회적 지탄을 받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또 다시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 학교에서는 자기학교 학생들의 내신성적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하여 시험문제를 쉽게 출제하거나 정답을 미리 흘려주는 방식으로 평균 성적을 90점 가깝게 부풀린 일까지 있었다.

‘성적 올려주기’에 대하여 가장 민감한 집단은 말할 것도 없이 수험생과 학부모들이다. 일부 학교에서 이런 일을 저지르면 나머지 다른 학교 학생들은 대학입시에서 곧바로 피해자가 된다.

그러므로 신속하고 철저하게 막지 못하면 기름에 불이 붙듯이 순식간에 다른 학교로 파급될 것이다. 이것은 전국 고등학교의 집단자살행위나 마찬가지이다. 아무도 고등학교의 학생부 기록을 믿지 않고 고교 교육 자체를 불신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도 그랬듯이 대학들은 고등학교를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 내신 성적의 비중을 낮추고 대학별 본고사를 요구하거나 자체의 선발기준을 강화하려고 할 것이다. 대학입시에서 고교 생활기록부의 비중을 낮추고 대학 본고사나 자체 선발 기준을 강화하는 것은 입시교육으로 병든 고교 교육을 정상화하자는 힘겨운 노력에 역행하는 행위이다. 결국 ‘성적 올려주기’는 고등학교가 고교 죽이기의 빌미를 자초하는 꼴이 된다.

성적 올려주기의 심각성은 이것이 대학입시에만 관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의 일부 지역에서도 지난해에 교사들이 자기 반 학생들의 성적을 올려준 사건이 일어나 큰 사회문제가 되었다.

미국 교사들이 학생의 답안지를 수정하면서까지 성적을 올려 준 동기가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학생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사 자신을 위해서였다는 점이다.

학생들 성적이 교사의 업무능력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이라고 해서 학생의 성적이 교사의 이익과 무관한 것은 아니다.

학생을 얼마나 잘 가르치느냐, 일류대학에 몇 명의 학생을 합격시키느냐가 교사를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평가하는 현실적인 척도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모든 교육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신성적 중심의 제도 하에서 교사와 교장은 학생들의 성적을 높여주고 싶은 유혹을 받지 않는다고 말하기 어렵다.

성적 올려주기는 교육 파괴 행위이므로 즉시 철저히 막아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근본적인 대책도 수립하여야 한다.

이번 사태가 말해주는 것은 교사 개별 시험, 전교시험, 전국시험을 모두 포함하여 교육평가에 대한 합리적이고도 세심한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논리적으로는 평가가 가르친 결과에 대한 확인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학생들이 시험에 나오는 것을 찾아 공부하기 때문에 평가는 가장 강력한 교육행위이다. 즉 평가가 곧 교육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과정과 교과서 정책도 중요하지만 교육평가는 오히려 더 중시해야 할 정책이다.

그리고 초등학교와 중등학교에 3, 4개의 기본교과와 소수의 학생 선택교과를 중심으로 하는 전국 학력고사의 실시를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추진하여야 한다.

전국 학력고사는 이번에 발생한 것과 같은 성적 올려주기의 재발을 막는 확실한 대책이 될 뿐만 아니라 대학입시제도의 기본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더욱이 학교교육의 질 관리를 위한 필수적인 요건이라고 할 수 있다.

김신일<서울대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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