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선대인/위신 추락한 의원 입법권

  • 입력 2000년 7월 12일 00시 14분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 헌법 40조는 국회의 입법권을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10일 자정경 국회 보건복지위에서는 이런 국회 입법권을 무색케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발단은 민주당 김명섭(金明燮)의원이 의원입법 형태로 제출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심의하면서 시작됐다.

올 7월부터 특례 노령연금을 지급하는 것을 뼈대로 한 이 법안은 복지부가 입법 잘못으로 7월 지급이 어렵게 되자 여당의원인 김명섭의원에게 부탁해 제출한 것.

그런데 한나라당 김홍신(金洪信)의원은 이날 회의에 배포된 입법검토서가 하루전 나온 입법검토서와 그 내용이 다르다며 정식으로 문제삼고 나섰다.

김홍신의원은 “전날 배포된 보고서에는 ‘이번 법안이 국회의 입법권을 경시하는 처사’라고 주장하는 등 강한 비판내용이 담겨 있었는데 오늘 보고서에는 모두 빠졌다”며 보고서의 변질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당사자인 수석전문위원은 “법안을 제출한 의원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내용을 일부 수정했다”고 인정한 뒤 “의원들이 앞으로는 간섭을 자제했으면 좋겠다”고 우회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자 김명섭의원이 “당신이 뭔데 의원 입법권을 문제삼느냐”고 윽박질러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이 법안은 복지부가 이미 3월부터 문제점을 인지하고도 이를 방치했다가 시행일이 가까워오자 뒤늦게 여당의원에게 입법을 ‘의뢰’했던 것. 이 때문에 복지부 소관업무인 약사법 개정안 마련에 가뜩이나 골머리를 앓던 복지위 소속의원들 사이에는 “우리가 쓰레기 하치장이냐”는 불만이 팽배했었다.

이날 사건은 한 의원과 전문위원 사이에 벌어진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안이 터지면 무책임하게 국회로 넘기고 보는 정부와, 정부의 껄끄러운 대목을 감싸주기 위해 입법권을 ‘수수방관’하는 의원이 있는 한 의료대란 같은 정책적 위기가 계속 양산되지 않을까.

<선대인기자>eod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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