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흐르는한자]本分(본분)

  • 입력 2000년 7월 11일 19시 08분


塗-진흙 도 炭-숯 탄 飮-마실 음

虎-호랑이 호 眈-노려볼 탐 克-이길 극

500년에 걸친 春秋戰國時代(춘추전국시대)는 混亂의 상징이 될 만큼 어지러운 세상이었다. 결국 이같은 혼란과 분열 국면은 강력한 통일국가의 출현을 희구하게 되어 秦始皇의 통일된 秦帝國이 등장할 수 있었다.

지금부터 2500여 년 전, 孔子는 바로 그 때 태어났다. 태어나고 보니 세상이 말이 아니었다. 中原이 온통 전쟁으로 불탔으며 民生은 塗炭(도탄)에 빠져 참상이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成人이 된 그는 까닭을 곰곰 생각해 보았다. ‘도대체 왜 이렇게 난리인가?’

결론은 간단했다. 각자 本分을 다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봉건제도는 토지의 재분할과 함께 강력한 신분질서가 특징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질서가 흔들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中央에 天子가 있었지만 제몫을 하지 못하고 매일 飮酒와 사냥, 酒色雜技(주색잡기)에만 홀려 있으니 천하가 편할 리 없었고, 그 밑의 諸侯들은 천자의 모습을 보고 배웠다.

자기 封土 내에서 힘을 길러 天子의 자리를 虎視眈眈(호시탐탐) 노렸을 뿐 天子를 받들어 모시고 外敵을 물리치겠다는 생각은 아예 없었다.

또 그 밑의 大夫들은 어떠했는가. 그들은 諸侯를 배웠다. 私兵을 모아 諸侯 자리를 탈취할 생각 뿐이었다. 이렇게 각자 제 할 일은 하지 않고 윗사람을 넘보면서 쥐고 흔들려고 하는 소위 ‘下克上’(하극상)의 풍조가 온 천하를 뒤덮고 있었던 것이다. 어지럽지 않을 수 없었다.

참다 못한 孔子는 외쳤다. ‘제발 분수 좀 지켜라!’ 유명한 ‘正名論’이다. 그의 나이 35세 때다. 齊의 景公(경공)이 어떻게 하면 政治를 잘 할 수 있는지 물어왔다. 이 때 그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君君, 臣臣, 父父, 子子’(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부모는 부모 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각자 本分을 지켜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우리에게도 좋은 속담이 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뽕잎을 먹겠다든지 주제 넘은 짓을 일삼는다면 일신의 불행은 물론이거니와 국가나 사회적으로 혼란만 초래하게 될 것이다. 春秋戰國時代가 그랬던 것처럼.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478sw@mail.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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