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존]<비천무>,흥행도 미지수?

  • 입력 2000년 6월 26일 10시 23분


시네마서비스의 강우석 대표는 지금부터 꼭 1년전 이맘 때, 사무실에 앉아 벽을 쳐다 보면 '부도'라는 단어가 떠오르곤 했다. 3년 연속 국내영화계 파워 1인자도 앞으로는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1월부터 그때까지 '되는' 작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대를 모았던 <자귀모>의 흥행도 예상을 훨씬 밑도는 수치를 나타내고 있었다. 제작비도 솔찮게 들어 간 작품이었다. 청춘스타들이라는 이성재 김희선을 내세운 <자귀모>가 이렇게 안되다니…

결국 <자귀모>는 서울 관객 40만선에서 그치고 말았다. 시네마서비스가 기울고 있다는 소문이 나온 것도 그때였다. 그러나 다른 작품들이 강우석을 살렸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와 <주유소 습격사건>이 예상을 훨씬 뛰어 넘는 흥행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강우석 대표는 다시 한번 某 영화전문지가 집계하는 영화파워 50인에서 1인자로 선정됐다.

역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상황은 반복된다. 시네마서비스의 올 상반기 작품은 줄줄이 '깨졌다'. <주노명 베이커리>와 <플란더스의 개> 그리고 최근의 <비밀>까지. 극장가 경기불황과 맞물려 시네마서비스의 배급 위력은 거의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아직은 괜찮을 것이라고들 생각하고 있다. 작년의 경우가 있으니까. 앞으로 뭔가 하나 터질 작품들이 나올 거고 그렇게 연말까지 흥행을 이어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첫작품이 바로 <비천무>다.

지난 22일 서울극장에서 열렸던 <비천무> 첫 시사회는 그러나, 영화계의 불안감을 해소하는데는 여전히 뭔가 모자라다는 것을 보여줬다. 영화관계자와 극장업자, 기자와 평론가들을 상대로 열린 이날 시사회는 8백석 규모의 극장을 가득 메울 만큼 관심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비천무>의 제작사인 태원엔터테인먼트와 투자배급을 담당한 시네마서비스의 관계자들은 시사회 내내 초조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과연 어떤 평가들이 나올 것인가. 결국 영화가 끝난 후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지긴 했다. 그러나 그것은 인사치레 정도였다. 분위기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던 것이다.

시사회 직후 영화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들이 쏟아졌다. 대부분 너무 '길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러닝 타임은 2시간 10분 정도. '길다'란 좋게 말할 때의 표현이고, 이걸 나쁘게 얘기하면 '졸리다'란 의미가 된다. 가장 극단적인 반응은 "마치 두개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는 것이었다. 무협 액션이 나올 때는 반짝, 스크린에 눈길을 가게 하다가 김희선이 나오는 멜로 분위기에서는 하품이 나온다는 것이다. 무협영화와 멜로영화 두편이 억지로 섞여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연출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비천무>는 김혜린의 동명 원작 만화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원작 만화는, 그것이 만화라는 속성상, 대하 서사 드라마로서의 뼈대를 튼튼이 갖추고 있다. 元말기를 시대배경으로 몽고족과 한족의 민족전쟁과 豪族간의 치열한 정쟁, 고려 유민 등 소수민족의 저항 등 실제 역사적 상황을 드라마틱한 구조로 그럴 듯 하게 엮어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제작사 입장으로서는 바로 그점이 고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를, 주인공 '진하(자하랑)'의 유혈복수극과 '설하'와의 러브 로망으로만 얘기의 초점을 좁혔을 것이다. 하지만 얘기의 규모를 줄일 바에는 보다 과감했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만화의 등장인물들을 모두 살리면서 얘기만 좁히다 보니, 몇몇 캐릭터들이 다소 '쓸데없는' 장치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여주인공 '설하'의 오빠 역인 타루가의 아들 '라이'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공은 이제 평단과 저널쪽으로 던져졌다. 특히 저널에서는 고민이 많을 것이다. 심정적으로는 그렇게 후한 점수가 매겨지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영화야말로 올 한해 우리 영화계의 기폭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에 있다. 자칫 <비천무>가 '망가지면' 올 한해 우리 영화계 전체가 하향곡선을 그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영화는 종종 문화적인 측면보다 산업적인 측면으로 해석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제작비로 물경 41억원이나 썼다.

이 영화의 최종 심의등급이 12세 관람가를 받았다는 점에도 주목을 해야 한다. 원작인 만화에 대한 소구력은 청소년층에서 보다 엄청난 수준이다. 만약 이 영화가 18세를 받았다면 흥행면에서 위험했을지 모를 일이지만 연령층을 하향 조정함으로써 이른바 '리스크'를 대폭 줄인 셈이 됐다. 이 영화를 두고 일부에서 "그래도 흥행은 기본선을 달릴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유도 그 점에 있다.

서울 관객수를 80만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고, 시네마서비스의 배급력을 고려할 때 초반 흥행은 폭발적이 될 가능성도 높다. 우리 관객들 가운데 상당수는 여전히 민족적 정서를 앞세우는 사람들이 많다. 심정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비천무>가 부디 <미션 임파서블2>같은 콧대높은 할리우드 직배영화를 눌러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장점이 거의 없는 작품이라고 얘기해서는 곤란하다. 홍콩 무협액션의 특징이라는 와이어 액션 등은 이번 영화에서 거의 최고 수준으로 표현됐다는 평가들이다. 출연배우들의 무술 연마도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등장인물들의 의상도 고증을 거쳐 당시의 복식사를 화려하게 재현해 내는데 성공했다.

너무도 아쉬운 것은 스타시스템으로 내세운 주연배우들의 연기다. 특히 여주인공역의 김희선 연기는 '큰 영화'일수록 연기력이 올바르게 뒷받침돼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설파한다. 미모는 유한하다. 하지만 연기력은 무한하기 때문이다.

<오동진(ohdjin@film2.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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