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코카콜라와 들쭉단물

  • 입력 2000년 6월 22일 19시 27분


1894년 한 여름날 미국 미시시피주 빅스버그에 사는 캔디가게 주인은 더위를 피해 코카콜라를 마시러 온 손님들을 보며 기발한 착상이 떠올랐다. 불과 8년 전 애틀랜타의 약제사가 개발한 음료는 그 때까지만 해도 큰 통에 담아 캔디가게에서 글라스에 따라 팔고 있었다. 그는 마개 달린 병을 이용하면 근교 농촌 사람들에게도 이 흑갈색의 음료수를 팔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병에 담긴 코카콜라를 판매한 업자였다.

▷코카콜라는 단지 탄산음료가 아니다. 맥도널드 햄버거와 함께 미국식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상품이다. 코카콜라의 상혼은 냉전시대에 미사일도 뚫지 못한 공산주의 국가의 빙벽을 뚫고 들어갔다. 유럽에서는 지금도 코카콜라와 맥도널드가게가 ‘코카콜러니제이션’(코카콜라에 의한 식민지화)과 ‘맥월드’(맥도널드 세상)를 걱정하는 사람들에 의해 테러의 표적이 되고 있다. 이 둘은 한 나라의 문화도 바꿔 놓는다. 맥도널드는 홍콩에 처음으로 깨끗한 화장실 문화를 도입했고 코카콜라는 본거지인 애틀랜타시에 올림픽대회를 유치하는 파워를 발휘했다.

▷작년 8월 북한 평양방송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청소년들에게 코카콜라를 먹일 것이 아니라 백두산 들쭉단물을 먹여야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들쭉단물은 백두산 일대에서 나는 진홍색의 산열매로 만들어진 음료수. 김위원장은 “고생을 안한 혁명 3, 4세대(청소년)들을 혁명 사상으로 무장시켜 부르주아 자유화에 물젖지 않게 해야 한다”고 걱정했다는 것이다. 들쭉단물은 백두산 혁명 정신을 배양하는 물이고 코카콜라는 미국 자본주의 자유화의 오염원인 셈이다.

▷남북정상회담 후 김위원장의 생각이 변한 것일까. 21일에는 중국 다롄 공장에서 생산한 코카콜라가 단둥을 거쳐 북한 신의주로 들어갔고 코카콜라 코리아사는 미국의 대북경제제재가 해제됨에 따라 한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배로 북한에 보낼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북한에 들어간 코카콜라는 외국인들이 이용하는 호텔과 음식점에서만 팔리게 된다. 평양의 청소년들이 들쭉단물 대신에 콜라를 마시며 맥도널드 햄버거를 씹는 날은 언제쯤 올 것인가.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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