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 역참(驛站)제도와 함께 일종의 숙박업소인 주막(酒幕)이 번성했다. 각 지방에서 한양으로 향하는 요지에는 예외없이 주막이 생겨 나그네들에게 술과 음식, 잠자리를 제공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경기 분당과 일산 등 수도권 신도시에 이른바 ‘러브 호텔’이 잇따라 들어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아파트단지 이웃에 ‘수상한 잠자리’가 생겨 주거 환경을 망치고 있으니 주민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특히 경기 성남시가 분당신도시의 백궁역 주변에 7개 숙박업소를 추가로 허가한데 대해 주민들은 “말이 숙박업소지 실제로는 상당수가 러브 호텔”이라며 “당국이 세금 수입에 눈이 어두워 주민들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시 당국이 스스로 내걸었던 ‘꿈의 전원도시’를 앞장서 포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일산신도시 주민과 교사, 시민단체들은 최근 고양시가 초등학교에서 200m도 안 떨어진 곳에 모텔 건축 허가를 내준데 항의해 대규모 규탄 대회를 열기도 했다.
▷물론 시당국은 해당 지역이 상업지역인 만큼 숙박업소 건립을 막을 법적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얘기다. 주거 및 교육 환경을 지키기 위해 도시설계 지침을 변경하는 방법도 있다. 실제로 경기 부천시는 올 3월 아파트단지 주변 상업지역에는 일정 규모 이상의 호텔만 지을 수 있도록 도시설계 지침을 강화하기도 했다. 법원도 지난해 자연경관 생태계 보호 등을 이유로 농촌 지역의 러브호텔 신축에 제동을 걸었다. 주거환경권은 법의 문제가 아니라 주민생활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송대근<논설위원>dk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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