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韓中무역 큰 틀을 봐야

  • 입력 2000년 6월 8일 19시 43분


한국 정부가 중국산 마늘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를 취하자 중국은 마늘보다 교역액이 무려 50배가 많은 한국제 무선전화기 등의 수입을 금지하는 초강수 보복으로 나왔다. 중국은 세계시장에 진출한 이래 자국산 제품을 차별하는 조치에 대해서는 상대 국가가 어느 나라이든 강력한 보복조치를 취하고 있다.

정부는 중국산 마늘의 고율관세 부과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른 정당한 세이프가드 발동이라고 밝혔지만 수입급등에 따른 고용감소 등 세이프가드 관련 규정의 세부적 요건을 충족시켰는지에 대해서도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농산물은 대외무역 관계에서 늘 부담을 주는 품목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선거를 앞둔 시기에 농민 보호도 중요하지만 국제적인 규칙을 무시하고 일방적인 농민 보호조치를 취하면 교역 상대국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더욱이 중국은 한국과의 교역에서 작년에 100억달러에 가까운 적자를 냈다. 마늘 관세를 30%에서 315%로 한꺼번에 큰 폭으로 올리면서 중국 정부와 충분한 대화를 했는지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한국에 주로 농산물을 수출하고 공산품을 수입하며 막대한 무역적자를 내는 중국으로서는 세이프가드 조치를 당하며 좌절감 같은 것을 느꼈을 수도 있다.

무역관련 업무를 관장하는 정부 부서가 복잡하게 나뉘어 있어 세이프가드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종합적인 판단이 부족했다는 인상을 준다. 산업피해 조사는 산업자원부 산하 무역위원회에서, 통상교섭은 외교통상부 산하 통상교섭본부에서, 관세 부과는 재정경제부에서 맡는다. 이 과정에서 부처간 협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한중 무역이라는 전체 숲을 보지 못하고 마늘 피해에만 집착해 소탐대실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WTO 가입을 앞둔 중국이 WTO 규정에 배치되는 수입금지 같은 반자유무역의 조치를 한 것은 유감스럽다. 특히 이런 유형의 보복에 굴복하는 선례를 남기는 것이 한국 정부로서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중국은 우리가 작년에 137억달러를 수출한 세 번째 큰 수출대상국이고 홍콩을 포함해 최대의 무역흑자를 구현한 시장이다. 엄청난 규모로 예상되는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의 이동전화 시장 진출 문제도 걸려 있다. 중국의 금수조치가 잠정적인 것이고 양자협의를 하자는 의사를 전해오는 만큼 한중 무역의 큰 틀을 해치지 않는 방향에서 신중하고 슬기로운 해결책이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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