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속으로]한정희 '유리집'

  • 입력 2000년 5월 12일 19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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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판에도 유행이 있어 계절을 탄다. 지금은 열대식물들의 시절, 작가들이 속도전을 벌이듯 앞다투어 크고 짙푸른 잎새들을 피워내고 강렬한 태깔과 향기를 지닌 꽃들을 뽑아낸다.

기묘한 역설인데, 요즘 판이 그러하기에 도리어 작가 한정희는 크게 눈에 뜨이는 존재다. 한정희는 한대(寒帶)의 툰드라 지대에 뿌리를 내린 식물이 땅이 녹을 때만 아주 조심스럽게 연록의 새순을 몸 밖으로 밀어내듯, 그렇게 소설을 쓴다. 천천히 조금씩 섬세한 수공으로.

▼'풍경'등 중단편 8편 담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에 ‘불타는 폐선’으로 당선하여 등단할 때, 심사위원이던 평론가 유종호 교수는 물론 작가 이문열씨를 비롯한 문단 선배들이 “정말 소설 잘 쓰는 작가가 나왔다”고 극찬하고 격려하고 기대했지만, 한정희의 툰드라에서는 선뜻 소설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등단 4년만에 첫 창작집인 ‘불타는 폐선’이 출판되었고, 그 때로부터 다시 7년이 지난 이제 그녀의 생애 두번째 저서인 ‘유리집’이 나왔다.

문예지에 발표됐을 때 동인문학상 후보작으로 선정되었던 작품인 ‘풍경’과 ‘침묵의 게임’을 비롯한 8편의 중단편 소설이 담긴 이 책은, 한정희 문학의 실체를 판독하게 하는 긴요한 기호를 담고 있다.

한정희는 탐욕의 작가이다. 늘상 문자 그대로 ‘견물생심(見物生心)’의 고된 경지에서 떠돈다. 견(見)하면 반드시 생(生)하는 세상과 사물에 대한 집요한 인식욕과 소유욕으로, 그녀의 손은 남보다 더 길다. 무형물이든 유형물이든 심지어 슬픔까지도, 그녀는 자신의 오관의 그물에 와 닿는 것은 모두 그 긴 손으로 나꾸어채서 품에 넣는다. 그래서 그녀의 소설에서는 고통조차도 일종의 소유물처럼 보인다.

한정희는 소리의 실체 찾기에 신 들린 작가이다. 소리, 그 현란한 무형(無形)의 유형(有形)! 침묵과 침묵이 아닌 것을 가려 듣느라, 그녀의 귀는 남보다 더 크다. 그녀는 사로잡힌 듯 세상의 갖가지 사람들과 인과관계의 사이에 존재하는 ‘침묵’의 실체를 집요하고 진지하게 추적한다. 그리하여 고함보다 거칠고 속삭임보다 부드러우며 비명보다 애절하고 비웃음보다 더 무례한 침묵의 본적지들을 낱낱이 찾아낸다.

▼'침묵의 실체' 진지하게 추적▼

지인들 사이에서 ‘브리지 게임광(狂)’이라는 놀림을 받는 그녀가 브리지 게임을 소재로 쓴 소설 ‘침묵의 게임’이야말로 공격적으로 ‘침묵’의 본질을 추적한 작품이지만, 실은 한정희의 소설들마다 모두 침묵이 배후에서 웃통 벗어 들고 소리치고 있다. 이것은 우리 한국문학사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는 작가적 능력이다.

‘유리집’ 안에 한데 묶여진 한정희의 소설들이 지닌 강점은 저항하기 힘든 서늘한 호소력으로 사람의 마음을 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사마라의 약속’과 ‘이웃집으로 들어가다’에 나오는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뒤에 고뇌하는 여자의 고통과 번민에 찬 삶에 대한 묘사는 읽는 이의 입안이 마르도록 생생하고 절실하다. 인간관계의 단절과 소외와 불신에 관한 그 길고 아픈 탄식이 어찌나 아린지, 외도할 남편 없는 독신녀조차 세상의 모든 유부녀들과 함께 통곡하고 싶도록 만든다. 작가의 실제 경험이 아니냐는 오해까지 일었을 정도다.

“모든 것들이 방수천 덧옷 위에서 굴러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내게서 흘러내린다”(사마라의 약속)는 말로 이 세상 삶이 지닌 허무를 눈 밝게 들여다보고 있는 작가 한정희, 그 안목 또한 섬세하고 정갈한 문체와 함께 그녀의 새 저서 ‘유리집’이 지닌 소중한 덕목이다.

송우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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