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나의 철학 유언', 佛철학자의 가상소설

  • 입력 2000년 5월 12일 18시 49분


□나의 철학 유언

장 기통 지음/동문선

기통:“하느님, 나는 당신의 신성한 종교가 진리임을 압니다.”

교황:“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하십시오. ‘하느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기통:“하느님, 나는 당신의 존재를 굳게 믿습니다.”

교황:“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기통. 말하십시오. ‘하느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기통:“하느님, 나는 당신을…아…!”

교황 바오로 6세는 기독교가 ‘사랑’임을 역설하지만 이 노철학자는 종교를 믿음으로 이해하고 철학적으로 탐구하는 데만 너무 익숙해져, 끝내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교황의 품에 안겨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것은 1901년에 태어나 1999년까지 20세기와 운명을 같이 한 프랑스의 철학자 장 기통(Jean Guitton)이 죽기 2년 전 자신의 죽음을 가상 소설 형식으로 엮어낸 이 책(원제목 Mon Testament Philosophique)에서 그려낸 자신의 마지막 모습이다.

소르본대 교수와 프랑스 한림원 회원,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대통령의 고문 등을 역임했던 그는 생철학자인 앙리 베르그송의 계승자이자 마르크스주의자인 루이 알튀세르의 스승이었고 프랑스 가톨릭계를 대표하는 철학자로 100권에 가까운 저서를 가지고 있다.

죽음을 이틀 앞두고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으로 시작되는 이야기에서 그는 자신을 찾아온 천사 루시퍼, 파스칼, 베르그송 등과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 물질주의적 세상에서 종교의 의미와 전망, 인간의 자유의지 등을 토론한다.

자기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소크라테스와는 인터넷시대의 철학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소크라테스, 인터넷은 철학의 구원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책벌레의 죽음을 의미하니까요. 깊은 생각에 잠긴 어떤 정신이라도 자기의 업무를 위해 곧 한 부대의 석학들의 업적과 맞먹는 전자 노예를 갖게 될 테니까요.”

죽음의 순간부터 하늘나라의 심판에 이르는 과정에서 펼쳐지는 사상적 역정의 재현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신앙를 지향하면서도 끝까지 개방적인 철학적 탐구의 자세를 견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권유현 옮김 337쪽 8000원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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