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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5월 9일 19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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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가정의 달이라서인지,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이 “자녀를 키우는 것은 공직을 수행하는 것과 같다”고 해서인지, 아니면 “정직하게 말해 지금 나의 가정, 가족관계도 그러한 숭고한 과정을 거쳐 이뤄낸 것이 아니다”라는 전장관의 연서 때문인지, 요즘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가정이, 가족이 그렇게 소중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다.
누구나 가족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따져보면 우리가 가장 마음 상하는 것도 가족 때문이고, 가족이 주는 기쁨 못지않게 고통도 크다. “식구들만 아니라면 하고싶은 대로 하며 살 것 같다”는 이도 봤다.
가족은… 내 몸과 공통점이 참 많다.
첫째, 정지용의 시에 나오듯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다’. 체하기 전엔 뱃속 어디에 위장이 있는지도 모른다. 아파야만 거기 위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아이들도 부모를 당연시하고 부모도 아이들이 잘 크는 것을 지극히 당연하게 생각한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이 없다지만 깨물리지 않으면 있는지도 모르는 게 열손가락이다. 거기 있다는 걸 알게 해주려면 어딘가 고장이 나야 한다. 엄마도 아파야만 지극히 구체적, 일상적으로 내게 그 고통이 다가온다. 그리고 진작 잘해줄 걸, 하고 후회한다.
둘째, 단점과 약점을 너무도 잘 안다. 남들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눈밑의 점이라든지, 잘 때 이를 간다는 것을 나자신은 인식하고 있다. 남들이 못보는 적나라한 모습을 가족만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도 없다.
어디가 아킬레스건인 줄 적확히 알고 있으니까 가장 날카로운 비수를 들이대는 이도 가족이고 소금을 뿌려대는 것도 지척간이다. 공인이나 재벌집안이 아닌 한(혹은 심지어 그렇더라도), 서로 부딪쳐도 잃을 게 없고 어떤 짓을 해도 내편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셋째,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아문다. 우리 몸이 신통한 것은 칼로 베인 상처에도 새살이 돋아나고, 독감에 걸려도 결국은 낫기 때문이다. 어젯밤에 그렇게 심한 말이 오갔는데 오늘 아침 태연하게 밥을 같이 먹는 것도 유전자를 나눈 가족끼리는 가능하다. 남 같으면? 안보고 살아버린다.
건강이 중요하지 않다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잃어봐야 내몸 중한 줄 안다. 가족은 내몸이자 안타깝지만 남이기도 하다. 내몸 같겠거니, 기대를 하기 때문에 내맘에 차는 대로 되지 않으면 실망한다. 가족관계에서 분노의 주원인은 서로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당연한 취급을 받는 데 있다고 미국의 스트레스컨설턴트 리처드 칼슨은 얘기했다. 줄 때는 내몸 챙기듯 하고, 받을 때는 남에게 받듯이 여긴다면 가족 때문에 생기는 갈등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김순덕(생활부 차장)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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