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票心을 겸허히 읽어라

  • 입력 2000년 4월 14일 18시 17분


제16대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여당인 민주당과 야당인 한나라당의 양당구도를 확고히 했다. 자민련은 ‘충격적인 퇴조’를 보였고 신생정당인 민국당은 당의 존립조차 어렵게 됐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양당구도가 영호남 지역주의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결과는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큰 숙제를 남겨주고 있다. 다만 유권자들이 정체성이 오락가락하는 정당이나 선거만을 위해 급조된 정당에는 표 주기를 꺼렸다는 점에서 한걸음 나아간 국민의 정치의식을 엿볼 수 있다.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지역주의가 약한 수도권에서 ‘선전’했다고 하나 전국적으로는 사실상 ‘패배’했다. 유권자들의 집권여당에 대한 견제심리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것이다. 제1당이 된 한나라당 역시 영남권에서 압도적 우세를 보인 것은 그 지역의 ‘반(反) DJ 정서’가 제1야당에 대한 몰표로 이어진 것이지 반드시 한나라당을 지지해서 나타난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겸허히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야는 선거결과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기에 앞서 보다 강화된 지역주의를 완화하고 해결해나갈 대책을 마련하는데 협력해야 한다. 특히 집권여당은 보다 큰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지난 2년여 동안 ‘국민의 정부’를 내세워 국민통합에 힘썼다면서도 왜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됐는지 반성해야 한다.

김대통령과 민주당은 또한 총선 사상 가장 낮은 투표율을 보인 이번 선거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것이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혐오는 여야 정치권 모두에 향한 것이라고 해도 가장 큰 책임은 대통령과 집권여당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정치개혁을 통해 정치로부터 등돌린 민심을 되돌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이번 총선의 선거운동과정에서 드러난 불법 부정행위부터 철저하게 조사해 위법행위가 드러날 경우 당선자라 할지라도 엄정하게 처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과거처럼 무소속 의원이나 약점 있는 다른 당 의원을 끌어들여 몸집 부풀리기에 나선다면 국민의 정치에 대한 혐오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는 이른바 386세대 등 신진 정치인이 대거 등장한 반면 구태에 젖은 ‘퇴물 정치인’들이 상당수 퇴출당했다. 시민단체의 낙천 낙선운동과 납세 병역 전과 등 후보자의 신상공개가 유권자의 정치개혁 열망과 맞물려 큰 효력을 보였다.

이제 선거는 끝났다. 여야는 선거과정에서 악화된 반목과 불화를 선거이후까지 마냥 끌어가서는 안된다. 선거에서 나타난 국민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상생(相生)의 정치를 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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