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최창모/'종교화해'의 새시대 오나?

  • 입력 2000년 4월 5일 19시 54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사죄 선언에 이어 21∼26일 5박6일 일정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했다. 교황의 이스라엘 방문은 이스라엘 독립 이후 사실상 최초의 일이다.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의 성지 방문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단지 12시간의 체류에다가 이스라엘 대통령을 제외한 어떤 지도자도 만나지 않았다. 대통령조차 여행 중 므깃도에서 만났으며, 교황은 한 차례도 그를 ‘대통령’이라 부르지도 않았고 이스라엘이라는 국호는 언급조차 하지않았다.

이번 교황 방문은 이스라엘 정부와 국민의 우호적인 환영과 전세계에서 몰려온 10만여 가톨릭 신도들의 참여로 시작됐다. 35년 전 크라코프의 대주교였을 때 예루살렘과 나사렛, 그리고 베들레헴을 방문했던 교황은 1986년 로마에 있는 유대 회당을 방문해 유대인을 “우리의 형”이라 불렀다. 1993년 바티칸은 반유대주의의 잘못을 시인했으며 ‘유대인의 방랑은 하나님에 의한 저주였다’는 낡은 신학을 수정했다. 지난달 12일 “진리를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행한 폭력”에 대한 사죄 선언에 이어, 이번 교황의 이스라엘 방문은 1978년 취임 이래 요한 바오로 2세의 재임 중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공식적으로 이번 이스라엘 방문 목적은 예수의 발자취를 따라 걷기, 에큐메니즘 구현, 종교간의 대화 증진 등이다. 바티칸은 교황이 다른 쪽에 대한 한쪽을 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지의 고통받는 백성들을 껴안기 위해서 방문한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민감한 문제인 평화와 화해, 인권에 대한 정치적 조언도 빼놓을 수 없는 목적이었다.

그가 찾아 방문하고 미사를 드린 곳으로는 데헤이사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비롯해 홀로코스트 기념관인 야드 바쉠, 베들레헴의 구유광장, 시온 산의 예수 최후의 만찬 교회, 갈릴리 호수, 나사렛 수태예고 교회, 통곡의 벽, 성전 산, 성묘교회 등 성지의 가장 ‘민감한’ 장소가 모두 포함돼 있다.

이번 교황 방문 중 가장 돋보이는 곳은 홀로코스트 기념관이었다.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에 대해 기독교의 책임을 인정하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교황이 태어난 폴란드의 작은 마을 바도비스에는 유대인들이 15%나 살고 있었다. 당시 그가 살던 아파트의 집주인 예히엘 발라무트도 유대인이었는데, 그 역시 나치의 학살을 피하지 못했다. 교황은 이스라엘 방문 직전에 뉴욕에 살고 있는 예히엘의 손자 론을 바티칸에 불러 만난 바 있다.

또한 이번 교황 방문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대화를 한 차원 끌어올리는 데 크게 자극을 줄 것으로 기대되며 비록 반유대주의가 의제에 포함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예수가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유대인에 대한 가톨릭의 입장을 분명히 전달한 것으로 보아 무방할 것이다. 아라파트가 교황을 만났을 때 “베드로 사도는 팔레스타인인이었다”고 말하자 교황은 즉각 “그는 유대인이었다”고 대답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반영한다고 하겠다. ‘유대인 예수’에 대한 신학적 논쟁은 기독교와 유대교간의 민감한 역사를 단적으로 상징한다.

이제는 기독교에 대한 유대인의 태도를 분명히 천명해야 할 차례다. 아직도 이스라엘 내에서는 기독교 선교사들에 대한 차별이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소수의 아랍 기독교인과 소수의 유대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가 사실상 없지 않다. 이미 교황청과 이스라엘 정부 사이에는 이스라엘 내의 교회 재산을 보호한다는 의정서가 교환된 바 있으나, 교회 신축 등에는 많은 제약이 남아 있다. 한 차원 높은 변화가 요구된다.

최창모(건국대 교수·히브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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