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탈세의혹 명백히 밝혀라

  • 입력 2000년 3월 28일 19시 41분


어느 후보는 재산이 10억원대에 가깝지만 재산세는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재산이 모두 부인 명의로 돼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같은 국회의원으로 의원세비 외에 별도 소득이 없다면서도 누구는 1200여만원의 소득세를 낸 반면 누구는 그 10분의 1인 120여만원을 냈을 뿐이다. 재산이 열 배 이상 많은 후보가 세금은 재산이 적은 후보의 100분의 1밖에 내지 않은 경우도 있다. 직계가족의 재산은 많지만 후보 자신의 납세액은 적었다는 해명이다.

변호사 의사 등 고소득 전문직 출신의 후보들 중 일부는 일반 봉급자보다도 세금을 적게 냈으며, 뚜렷한 직업 없이 ‘정치에만 목을 걸어온’ 상당수 여야(與野) 정당후보들은 재산세든 소득세든 납세실적이 전무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재산도 소득도 없이 살아온 그들이 어떻게 수억, 수십억원씩 들어간다는 선거판에 나설 수 있는지 의아할 지경이다.

어제 시작된 16대 총선 후보들의 재산 납세 신고의 내용들이다. 한마디로 ‘의혹 투성이’요, ‘눈 가리고 아웅식’이라는 보도다. 이렇게 된 데는 정작 유권자들이 알아야 할 핵심 사항들이 신고대상에서 누락됐기 때문이다. 종합토지세가 그 대표적인 예다. 현행 관련선거법은 후보의 소득세 및 건물에 대한 재산세만 신고하도록 했다. 가장 금액단위가 큰 토지에 대한 세금 신고는 제외됐다. 또 재산은 본인과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 명의를 모두 신고하도록 하면서도 재산세는 후보자 본인이 납부한 것만으로 신고대상을 축소시켰다.

이렇듯 선거법 자체에 구멍이 많은데다 일부 후보들의 불성실한 신고와 축소 은폐 시도가 겹치고 있는데도 신고를 받은 선거관리위원회에는 이들 신고사항을 실사할 권한마저 없다. 모처럼 유권자의 올바른 선택을 위해 제공한다는 선거정보가 오히려 혼란과 불신만 부추기는 결과를 빚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와는 별도로 총선시민연대가 제기한 15대 현역의원 13명의 ‘증여세 탈루 의혹’도 명백히 밝혀져야 할 사항이다. 자녀에게 수억원대의 땅과 주식 등을 물려주고도 부동산 취득경위와 자금출처에 대한 해명을 거부하거나 불분명한 소명에 그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더 이상 국민의 기본의무인 납세의 의무마저 소홀히 하는 인물을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로 보내서는 안 된다. 용케 눈가림으로 당선이 된다고 해도 ‘의혹’은 추후라도 명명백백히 밝혀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잘못된 선거법은 다음 국회에서 고치더라도 이들에 대한 추궁마저 흐지부지 넘겨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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