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새영화]'시암 선셋'/행복은 슬픔과 고통을 타고 왔다

  • 입력 2000년 3월 23일 19시 37분


당신은 사랑하는 누군가가 비행기에서 떨어진 ‘냉장고’에 깔려 죽는다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

냉장고에 압사당한 사랑스러운 아내. 도대체 파격적이다 못해 말문이 막히는 도입부다. 더구나 영화 ‘장미의 전쟁’의 부부(마이클 더글라스, 캐슬린 터너)처럼 원수지간도 아니고 ‘마누라 죽이기’의 황당한 상상도 아니다.

‘시암 선셋’은 불운이 계속되는 한 남자의 기막힌 경험을 통해 인생의 의미와 행복의 주소는 과연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 ‘호주산’ 코미디 영화다.

‘머피의 법칙’에 걸린 것처럼 호주의 황야로 떠난 여행길에서도 페리(라이너스 로치 분)에게 불운은 계속된다. 여행사의 덜덜거리는 낡은 버스에 몸을 싣지만 예외없이 지진과 홍수 등 사고가 잇따른다. 영화는 페리를 비롯해 악당 닉(이안 블리스)의 여자였다가 돈을 훔친 뒤 버스에 탄 그레이스(다니엘 코맥), 자존심으로 버티는 버스 운전기사, 음치가수 등 다양한 캐릭터의 인물들을 한 버스에 태워 ‘인생 수업’을 시킨다.

아내의 슬픈 죽음을 말하면 주변 사람들이 “정말 냉장고가…”라며 킥킥 웃어버리는 가엾은 페리의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최근 ‘미션 임파서블2’에 출연한 배우 출신의 폴 존슨 감독은 행복에는 인간의 의지를 넘어서는 뭔가의 힘이 작용한다고 믿는 것 같다.

그 비밀은 영화 제목이기도 한 환상의 색 ‘시암 선셋(Siam Sunset)’에 깃들어 있다. 사전적 의미로는 태국의 일몰이지만 극 중에서는 페리가 태국의 해변에서 아내의 머릿결에 비친 주홍빛 노을 색에 붙인 이름이다. 사실 색채연구가인 페리가 극 중에서 만들고자 하는 이 색깔은 자신이 가장 행복했다고 믿는 인생의 한 순간을 상징한다. 하지만 수 많은 색깔을 섞어보지만 그의 노력은 거듭 실패한다. 그것을 해내는 것은 다름아닌 자연. 그레이스를 통해 사랑을 다시 찾은 페리가 하룻밤을 지낸 뒤 눈을 뜨자 자연은 놀랍게도 바람을 이용해 몇 통의 페인트를 뒤섞어 그가 찾던 환상의 색을 뚝딱 만들어낸 것이다. 무게를 잡으면 지루해질 수도 있는 이야기를 웃음 속에 흥미롭게 풀어간 존슨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지나친 우연의 반복과 작위적인 상황 연출이 많지만 어차피 도입부를 ‘냉장고의 만행’으로 시작한 이상 감수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지난해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관객 인기상과 부천판타스틱영화제 관객상 수상작. 18세 이상 관람가. 25일 개봉.

<김갑식기자> 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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