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고도를 기다리며' 포조와럭키역 정재진 김명국

  • 입력 2000년 3월 22일 19시 25분


극단 산울림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포조와 럭키로 출연하는 김명국(38) 정재진(48). 안석환(에스트라공 역) 한명구(블라디미르 역)와 함께 7∼10년째 이 연극에 출연해오면서 몸에 밴 농익은 연기로 국내 연극사상 최고로 꼽히는 앙상블을 이루고 있는 배우들이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언제 올 지 모르는 ‘고도’와의 만남을 기대하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의 삶을 그린 연극. 포조와 럭키는 이들 앞을 지나가는 행인이다. 배불뚝이 포조는 무거운 짐을 든 럭키를 긴 밧줄로 묶고, 채찍을 휘두르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명령한다. “앞으로, 뒤로, 의자!”

이들의 기괴한 분위기는 공포와 함께 진한 페이소스가 담긴 웃음을 자아낸다. 럭키가 이 연극에서 대사를 말하는 것은 단 한 장면. 말이 없던 럭키가 3분20초 동안 폭포수처럼 장광설을 쏟아내는 ‘생각하기’를 할 때면 객석은 폭소로 가득찬다.

“언젠가 PC통신에 이런 평이 난 적이 있어요. 럭키가 내 모습 같다고. 세상일에 끌려다니며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결코 짐을 내려놓지 못하는….” (정재진)

두 인물은 자칫 심각해질지도 모르는 이 연극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이들이 한 번씩 태풍처럼 무대를 휩쓸고 지나감으로써,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기다림은 더욱 더 고독하고 외롭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

정재진은 서울 동숭동의 대학로극장장도 맡고 있으며 ‘불 좀 꺼주세요’ ‘관객모독’ 등 화제작에 출연했던 배우. 10년째 ‘고도를 기다리며’의 럭키 역을 맡으면서 이 연극으로 아일랜드의 더블린연극제와 일본 도쿄 공연 등 해외공연에도 참가했다. 김명국은 “‘포조’ 역은 꼭 채플린의 영화에서 좇아다니다가 넘어지는 배불뚝이 경찰같은 인물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두 사람 모두 나이가 들어도 이 연극을 계속해 삶의 경험에 따라 달라지는 연기를 펼쳐보이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4월9일까지 서울 마포구 서교동 산울림소극장. 화수목 7시, 금토 3시 7시, 일 3시. 1만2000∼2만원. 02-334-5915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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