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진단]송기도/피노체트사태 獨自시각 필요

  • 입력 2000년 3월 10일 19시 21분


영국의 잭 스트로 내무장관은 이달 초 17개월 동안 런던 교외의 한 주택에 연금 상태에 있던 칠레의 전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석방했다. 이로써 영국은 ‘뜨거운 감자’인 피노체트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스페인의 가르손 판사는 1998년 10월 신병 치료차 런던을 방문한 피노체트를 과거 집권 때 스페인 시민 등 94명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했다. 그리고 영국과 스페인이 체결한 범죄인 인도협정과 유럽테러협약에 의거해 피노체트의 신병을 인도해달라고 요구하면서 세계적 관심을 끈 피노체트 재판이 시작됐다.

칠레정부는 피노체트가 종신 상원의원으로 대통령의 특명 전권대사를 겸하기 때문에 면책특권이 있음을 주장하며 강력 항의했다. 그러나 영국 상원의 5인 재판부는 11월 25일 피노체트가 집권기간 중 저지른 잔악 행위에 대해 국가 원수로서의 면책특권을 갖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이후 1년 반 동안 피노체트 재판은 칠레 스페인 영국 미국 등 많은 국가의 주요 관심사였다.

영국 정부는 84세의 피노체트가 치매 등 건강상의 이유로 더 이상 재판을 받을 수 없다며 지난 1년 반 동안 계속된 재판을 종결했다. 결과적으로 피노체트의 건강이 반인류 범죄의 단죄보다 더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병들고 지쳐 휠체어를 탄 피노체트는 칠레공군의 특별기로 꿈에도 그리던 고국 땅에 돌아왔다. 그런데 조그만 기적이 발생했다. 피노체트는 곧바로 걷기 시작했으며 그들의 ‘지도자’를 환영하기 위해 도열해 있던 육군 총사령관과 굳게 악수하고 감격의 포옹을 했다. 해군과 공군참모총장 그리고 경찰청장과 악수를 나눈 후 비로소 가족들의 인사를 받았다. 이어 준비된 헬기를 타고 마치 ‘전쟁영웅’처럼 ‘피노체트’를 연호하는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 육군병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공수부대의 철통같은 호위 속에 귀국 첫날밤을 보냈다.

1년 반 동안 계속된 피노체트 구속과 재판은 인권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을 촉발시켰다. 어떤 의미에서 피노체트 재판은 피노체트가 석방됨으로써 결과 없이 끝났다고 할 수도 있다. 그동안 ‘국제사면위원회(AI)’ 등 전세계 인권단체들은 피노체트에 대한 준엄한 심판을 강력히 요구했으나 영국은 국가 이익을 인권보다 중요시했다.

그러나 이번 피노체트 재판이 결코 헛된 일은 아니었다. 1948년 세계인권선언 이후 ‘종이 선언’에 머물러 있던 인권이 한 단계 더 진전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각국의 전현직 독재자들은 재임 중 인권유린 등 반 인권적인 행위를 했을 때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재판정에 세워질 수 있다는 전례가 생긴 것이다.

이제 칠레는 그동안 주장했던 대로 그들 손으로 피노체트를 단죄해야 하는 ‘어려운 일’을 눈앞에 두고 있다. 칠레 정부는 그동안 피노체트에 대한 심판과 처벌은 외국이 아니라 칠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이를 전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칠레의 상황은 피노체트가 영국으로 떠날 때와는 많이 바뀌었다. 무엇보다 27년 전 잔인한 유혈 쿠데타로 쫓겨난 아옌데 사회주의 정권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라고스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러나 아직도 자신을 따르는 충성스러운 군부가 있음을 피노체트는 귀국하는 공항에서 입증해 보였다.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집권한 아옌데 사회주의 정부를 붕괴시킨 1973년의 유혈 쿠데타에 깊숙이 개입한 미국은 피노체트 정권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취했다. 중남미에서 미국의 정책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한국의 대외정책도 그동안 피노체트에 대해 우호적이었다. 이제 중남미 국가에 대해 우리의 시각을 가지고 접근해야 할 것이다.

송기도(전북대 교수·중남미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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