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새영화]소년은 울지 않는다

  • 입력 2000년 3월 9일 19시 47분


‘소년은 울지 않는다(Boys Don’t Cry)’는 가슴저미는 통증없이 보기 어려운 영화다.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는 자유를 갈망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던 가여운 한 젊은이의 일생은 때론 참혹하기까지 하다. 이 영화가 1993년 실제 있었던 일을 다뤘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참혹함의 정도는 더해진다. 영화의 소재 자체는 ‘여자와 사랑에 빠진 한 남장여성의 비극’정도로 요약되는 선정적인 이야기. 그러나 초년병 감독 킴벌리 피어스는 선정성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서글픈 기록을 담담한 화법으로 들려준다.

자신이 남자라고 생각하는 스물 한 살의 처녀 티나 브랜든(힐러리 스왱크 분)은 남장을 한 채 여자들과 어울리며 자유를 느낀다. 술집에서 한 여자를 도운 인연으로 네브라스카 주의 작은 시골마을로 옮겨간 그는 라나(클로이 세비이니)와 사랑에 빠진다. 어느 날 브랜든이 과속으로 운전하던 자동차가 경찰의 단속에 걸리는 바람에 그의 비밀이 밝혀지고, 브랜든이 여성임을 알게 된 난폭한 청년들은 그에게 혹독한 폭행을 가한다.

영화는 젊은 여성이 남장을 하고 동성과 키스를 하는 첫 장면부터 당혹스럽다. 관객은 남장을 한 브랜든이 과속으로 경찰의 단속에 걸릴 때나 거친 청년들과 어울릴 때 혹 그의 정체가 탄로나지 않을까 내내 마음을 졸이게 된다.

피어스 감독은 성 정체성의 문제와 끔찍한 폭력을 다루면서도, 이를 목소리 높여 고발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엄살떨지 않고 묵묵히 감내하는 브랜든을 통해 한층 더 울림이 많은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성폭행을 당하고도 누구의 동정도 구하지 않은 채 혼자 자신을 추스리는 가녀린 브랜든의 안간힘은 눈물겹다.

이 영화는 흙먼지 이는 황량한 미국 중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외되고 가난한 젊은이들의 사랑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공장에서 일하는 가난한 처녀 라나와 브랜든의 사랑은 마음 둘 곳 없이 떠돌고 상처받은 두 영혼의 깊은 교감으로 표현된다. 그 때문인지 라나가 ‘남자친구’ 브랜든이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도 그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모든 출연진들의 연기가 고르지만 이 영화는 주연을 맡은 힐러리 스왱크의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장을 한 여성의 이야기인 탓에 관객은 스왱크의 동작과 표정 하나하나를 집중해서 보게 되지만 거의 ‘연기’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그의 연기는 자연스럽다.

힐러리 스왱크는 이 영화로 미국내 모든 비평가협회가 주는 여우주연상을 휩쓸고, 올해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탔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지만 편안한 감동을 좋아하는 아카데미가 이 ‘불편한’ 영화에 상을 줄지는 다소 의문. 18세 이상 관람가. 11일 개봉.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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