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라이프 마이 스타일]김남훈/재미찾아 살기

  • 입력 2000년 3월 7일 20시 06분


아는가. ‘야쿠자에 의해 시체가 처리되는 방법’으로 일본어를 늠름하게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럼통에 넣어지고’‘시멘트가 부어진 후’‘바다에 버려진다’는 문장에는 수동형이 물경 세 개나 등장한다. 나아가 ‘시체를 버려라’란 말로는? 처절하고도 완벽하게 명령형을 익힌다.

내가 ‘엽기적’ 방법을 선택한 이유는 ①엽기란 ‘썰렁한 유머’의 대를 잇는 차세대 문화적 코드이고 ②엽기를 쓰면 내가 금방 유명해질 것이고 ③엽기적 상황에선 정서적 지적 상상력이 극대화돼 암기가 절로 되기 때문이다. 엽기는 변태적이고 기이한 것, 그 이상. 소수 뛰어난 자들만이 구사할 수 있는 차가운 개그이자 쓴웃음이다.

▼ 재미의 시대 ▼

아아, 들리는가. ‘재미의 시대’가 도래하는 소리를. 재미가 원시적 테크닉의 수준을 넘어 그 자체가 의미로 인식되는 시대.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사람들은 뭉치고, 또 그렇게 만들어진 커뮤니티가 시대의 강력한 중심으로 떠오른다.

천리안 인터넷방송(www.cfocus.net)에서 매주 30분 일본어 강의를 하는 내겐 감동의 펜레터가 쇄도한다. 강의 제목은 ‘엽기(獵奇) 일본어’.

‘야한 비디오를 빌릴 때 한국과 일본의 차이점?’ 정답은 “한국에서는 털미썸딩(에로비디오)을 빌리기 위해 월트디즈니 만화를 ‘물타기용’으로 함께 빌린다. 반면 일본에서는 테이프 위에 꽂힌 번호표만 빼내어 가게 주인에게 주면 두꺼운 회색 봉투에 테이프를 슬쩍 넣어주므로 달랑 하나만 빌려도 된다.”

이상을 일본어로 배우다니! 생활 속 지혜도 더불어 배우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재미가 있으면 목숨도 던진다. 모터사이클 광인 나는 일본의 관련 잡지를 읽기 위해 대학 3학년 때 휴학계를 내버렸다.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어학원에서 문법 회화 한자 시험대비반 프리토킹 등 일본어 강의를 몽땅 들었다. 2개월이 지나니 일본책이 띄엄띄엄 읽혔고→4개월 째에는 TV드라마가 귀에 들어왔으며→6∼8개월이 되자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며 웃었고→10개월째 부터는 일본인과 농담을 주고 받았다.

엽기 일본어를 진행하기 위해 일주일에 사흘은 밤을 꼬박 새워야 한다. 대본을 쓰고, 자막을 넣고, 사진 넣어 편집하고, 또 일본인에게 감수받느라. 그래도 110㎏인 체중은 줄어들 기미가 없다. 왜냐고? 재미있으니까.

▼ 디지털&아날로그 ▼

인터넷에 중독돼 대인 관계를 기피하는 것은 감수성 결핍으로 생기는 병폐. 디지털적인 테크닉과 아날로그적인 감수성을 겸비할 때만이 21세기 ‘하이브리드 인간형’이라고 나는 정의한다. 나는 PDA(개인휴대정보단말기)가 없으면 일정 관리가 뒤죽박죽되는 ‘디지털 맨’. 그러나 다른 편으로는 질펀하게 술을 마시거나 모터사이클과 프로레슬링의 원시적 힘과 스피드를 즐긴다.

다음은 오토바이를 타는 나를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을 읊은 시 ‘잡문졸필’ 시리즈 중 일부. 나의 탁월한 감성의 일단이랄까.

‘내가 오토바이를 타는 동안 호출기가 울리면 신경 쓰다 사고날까봐, 걱정이 돼도 삐삐 한번 못 치실 때/용돈으로 4만원은 불길하다며 괜찮다는데도 2000원을 더 얹어 주실 때/…/부러진 팔다리는 다시 고칠 수 있지만/무너지는 부모의 마음은 어쩔 수 없다.’

▼ 에로비디오 광 ▼

취미도 ‘직업’ 수준으로. 500여편의 에로비디오를 섭렵했다. 제작사 감독 주인공 스토리전개 카메라기법상의 특징을 분석하고 네티즌 에로비디오 동호회 회원 자격으로 400명과 진지한 의견을 교환한다.

16㎜ 에로비디오. 그 정제되지 않은 어설픈 연출에서 샘솟는 인간미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정사장면이 펼쳐지면서도 다른 한켠에는 카메라맨의 모습이 거울을 통해 반사되는 풋풋한 영상이란.

다음은 내가 선정한 에로비디오 베스트 3와 그 이유. ①‘투문정션’(미국). 서커스 단원과 부자집 딸의 관계. 화면전개에 맞춰 흐르는 음악이 한편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 ②‘악마의 사춘기’(미국). 배우의 손가락 및 발가락 끝 연기가 긴장감을 잘 살린, ‘끝선 처리’가 돋보이는 작품 ③‘어쭈구리’시리즈(한국). 이 작품 이후로 여배우의 얼굴이 카리스마를 가지고 아름다워지기 시작했다.

(1974년 생인 김남훈씨는 인터넷방송서비스 벤처기업인 ㈜캐스트서비스(www.castservice.com)의 정보분석가. 일본의 효과적인 컨텐츠를 찾아 계약을 체결하고 프로그램을 한글화하는 작업을 한다. 별명은 ‘인간어뢰’. 아이디는 ‘무거운 자’라는 뜻의 ‘heavy1(one)’. 프로레슬링 입문이 꿈. 1998년부터 어머니가 계주로 있는 계의 멤버로 있다. 내달 곗돈을 타면 전액 주택부금에 쏟을 예정.)

<정리=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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