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디지털]빌헬름 라이히의 '21세기의 이데올로기'

  • 입력 2000년 2월 21일 07시 39분


《“친구 생일날, 노래 부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친구에게 폭행을 가해 죽게 만든 일이 있었다. 이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집단의 요구에 불응한 개인은 죽음까지 감수해야 하는 우리 사회의 일면을 보여준다고 하면 너무 비약적인 해석인가? 우리는 술자리에서 분위기를 띄운다며 개인에게 노래나 춤을 강요한다.… 자신의 요구에 대한 순응과 복종, 그것만이 그들이,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다.”(한 대학의 ‘철학연습’ 시간에 발표된 학생 강연진의 발제문 중에서)》

라이히 선생님,

20세기의 마지막 해였던 작년, 한국의 진보적 계간지 ‘당대비평’은 ‘우리 안의 파시즘’이라는 특집에서 외적 정치적 억압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내면화된 권력’ 혹은 ‘자발적 복종’의 측면에서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파시즘의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우리 마음 속의 권위주의 체제”(‘인물과 사상’ 11호) 등의 주제를 통해 지속되고 있고, 저는 이 문제가 21세기 한국사회가 풀어야 할 핵심적인 과제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40여년 전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 당신을 오늘 떠올리는 것은 당신의 정신분석학적이며 정치심리학적 연구가 파시즘 재생산 구조의 핵심을 파헤쳤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인간의 심리 문제를 사회의 권력구조라는 맥락에서 연구했습니다. 당신은 가부장적·권위주의적 체제에서 이뤄지는 성(Sexuality)의 억압이 정치적 권력에 자발적으로 복종케 하는 심리구조를 형성한다고 주장했지요. 가정과 학교와 종교적 신비주의는 이러한 메카니즘의 운영에 절대적 역할을 하고요.

당신은 ‘파시즘의 대중심리’라는 책에서 “설명해야 할 사실은 배고픈 자가 빵을 훔치거나 착취당한 자가 파업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아니라, 왜 배가 고프면서도 훔치지 않고 왜 착취당하면서도 파업하지 않느냐는 것이다”라고 말하셨지요. ‘자아의 식민지화’ 현상이 존재하는 한 민주주의를 위한 기본적 전제, 즉 스스로 주인의식을 지닌 개인의 존재라는 조건은 충족될 수 없습니다. 당신의 연구는 이런 의미에서 이데올로기적 현상을 규명하고 그 극복방안을 모색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21세기의 인간상 탐구에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또 당신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인간의 문제를 규명하기 위해 어느 한 가지 전공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을 다 아우르면서 연구를 진행했다는 점이지요. 당신은 인류사회 문제의 실천적 해결을 위해 학제간 연구가 얼마나 필요한가를 보여줬지만 이 때문에 오히려 학계의 외톨이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문제가 아니더라도 당신은 어차피 당신이 관계하던 모든 분야에서 앙팡 테리블(enfant terrible)이었습니다.

나치 정권은 당신의 책을 금서목록에 올리고 공개적으로 태워버렸습니다. 인간 해방의 실천적 열정에서 당신이 가입해 활동했던 공산당도 ‘파시즘의 대중심리’가 출판될 즈음인 1933년 당신을 축출했습니다.

소련의 사회주의 건설 양상에 대한 당신의 비판과 파시즘의 문제를 개인의 심리적 차원에서 분석한 당신의 연구는 그들에게 용납될 수 없는 이단이었습니다.

런가 하면 한때 당신을 수제자로 받아들였던 프로이트의 제안으로 당신은 1933∼34년 독일 및 국제 정신분석학회에서 제명됐습니다.

유태인인 프로이트가 주축이 된 학회의 당시 최대 목적은 나찌 정권 하에서 살아 남는 것이었던 반면, 당신은 학회를 해체할지언정 나치 정권과 타협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을 뿐더러 정치활동을 금지한 학회 규정에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으로 망명했지만 그곳에서도 당신의 비정통적인 연구 방법은 미국 식품의약 관리부의 고소대상이 돼 당신은 결국 감옥에서 세상을 뜨고 말았지요.

21세기가 시작되는 지금, 우리는 두 가지 측면에서 당신의 의미를 되새기게 됩니다. 첫째, 이데올로기의 문제는 좁은 의미의 정치적 이념의 문제를 떠나 인간의 일상적 삶과 문화 전반에 걸쳐 인간 심리의 차원에서 재생산되고 있는 권력구조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역사적, 특히 학술사적 측면에서 볼 때, 당신의 삶과 연구작업은 중대한 의미를 담고 있는 ‘사건’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삶에 개입한 여러 종류의 권력구조 속에서 철처히 저항자로 남았으며 결국은 피해망상증으로 내몰렸습니다. 당신의 삶과 죽음이 너무도 한스러웠던 나머지 당신은 당신의 미발표 원고들을 사후 50년이 되기 전에 발표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기까지 했습니다.

‘빌헬름 라이히’라는 ‘사건’은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정치권력 문화권력 언론권력 학문권력 등 제도적으로 민주화된 사회에도 존재하는 권력의 문제에 대한 도전이며, 우리가 새롭고 엉뚱한 생각들에 대해 얼마나 열려 있느냐는 물음이기도 합니다. 20세기의 질곡 속에서의 당신의 삶 자체가 21세기에 숙제를 던져 준 것이지요.

지금 세계는 이데올로기와 관련된 주제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 합니다. 한편으로는 동구 사회주의권의 몰락에 즈음해 이제 이데올로기는 끝났다는 견해가 널리 유포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본질주의 또는 하나의 진리관을 전제하는 듯한 이데올로기론이 포스트모더니즘의 대두와 더불어 이제 한물간 구시대적 사고 패러다임에 속한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현상이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이데올로기’라는 개념 자체가 얼마나 다양한 의미의 층을 갖고 있으며 그 개념 사용이 얼마나 이데올로기화되어 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줍니다.

지난 세기 우리는 한 세대를 군부독재 치하에서 살아 왔습니다. 세기 말에 이르러 군부 독재는 사라졌다고 하나 우리는 많은 부분 그 속에서 길들여진 의식을 갖고 사회를 꾸려가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단지 의식개혁을 설교한다고 해서 풀리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제 21세기의 새로운 인간상 정립을 위해 우리는 당신의 작업이 시사하는 바를 토대 삼아 이데올로기 현상을 문제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좁은 의미의 정치적 이념의 테두리를 벗어나 권력과 인간 의식의 문제로서 말이지요.

군부 독재는 아니더라도 이 사회 속에 존재하는 여러 양상의 권력구조를 분석하고 그 구조가 어떤 방식으로 인간의 심리 속에 재현되는지를 철저히 밝혀내야 할 것입니다.

독일 브레멘의 외딴 방에서 동양의 젊은 학인 드림

최현덕(한일장신대 겸임교수·철학)

▼이데올로기 개념의 역사적 전개▼

‘이데올로기’라는 용어는 200년 전 프랑스혁명과 거기서 태동된 유럽 시민사회가 성립되던 시기에 등장했다. 프랑스혁명 뒤 설립된 ‘프랑스 국립학술원’에서 데스뛰드 드 트라씨 등의 학자들은 계몽주의 정신에 입각해 인간의 인식문제 내지 관념의 형성과 작용 등을 연구하는 새로운 학문을 창시한다. 이 ‘아이디어(관념)에 관한 과학(science des idees)’의 이름이 ‘이데아(idea)’와 ‘로고스(logos)’를 합친 ‘이데올로지(id'ologie)’였다.

이 ‘관념학’이 등장한지 얼마 안 된 1800년대 초 프랑스에서는 혁명적 이상의 일관된 실현을 요구하는 ‘관념학파’(이데올로기 학파) 학자들과 구세력 특히 가톨릭 세력과의 타협을 통해 권력을 구축하려는 나폴레옹 사이에 갈등이 벌어졌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정책을 비판하는 관념학파 학자들, 즉 ‘이데올로그’들을 ‘현실정치에 도무지 이해가 없는 몽상가’라고 비난했다. 이 과정에 ‘이데올로기’ 용어의 본래 의미는 퇴색하고 논쟁에서 상대방의 생각을 허황된 것으로 몰아붙이기 위한 용어로 부각됐다.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사회과학적 차원의 ‘이데올로기’ 개념이 형성된 것은 마르크스에 이르러서다. 그는 프랑스혁명과 그 뒤의 프랑스 역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형성과 함께 새로운 지배 메커니즘이 등장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자유 평등 박애’의 구호 아래 사회 전체의 이익인 양 포장된 채 지배계급의 특수한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기만적 의식을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기’로 명명했다.

그 뒤 엥겔스와 레닌을 거쳐 이 개념은 ‘계급의식’ 또는 ‘계급의식을 반영하는 정치적 이념’의 의미로 확대됐고, 정신분석학 지식사회학 신실증주의 등 여러 입장들이 이데올로기 논의에 개입하면서 이데올로기 현상은 현대 사회분석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았다.

▼키워드: '인간 의식 속의 이데올로기'▼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1897∼1957)는 1930년대 독일에서 파시즘의 등장을 경험하면서 그 배경에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가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 정신분석학과 마르크스주의를 접합시켜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억압적 체제가 유지되는 것은 그 체제의 권력관계가 인간 의식 속에 내면화돼 자발적 복종이 이뤄지기 때문임을 밝혔다. 체제순응적 심리태도는 어린 시절 가정에서의 사회화 과정에서 형성되며 권위주의적 가정은 권위주의적 국가의 재현이라는 것이다. 권위주의적 가족제도에서 아버지의 지위는 필연적으로 여성과 어린아이에 대한 엄격한 성적 억압을 동반한다. 어린이의 자연스러운 성과 욕구를 도덕률로 금지하거나 권위주의적으로 억압할 때 어린이는 무서움을 느끼며 인간으로서의 반역의 힘을 차츰 잃게 된다.

한편 아들은 권위에 대한 복종적 태도뿐 아니라 자신을 아버지의 권위와 동일시하는 의식도 발전시킨다. 이렇게 가족 내의 권위주의에 대한 순응은 자연스럽게 국가의 권위주의에 대한 순응으로 확대된다.

이제 이런 인간은 자유가 주어져도 그것으로부터 도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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