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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월 31일 20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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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말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올해 75세, 김종필(金鍾泌)자민련명예총재는 74세, 박총리는 73세. 실례를 무릅쓰고 말한다면 세 분은 이제 ‘명예로운 은퇴’를 준비해야 할 때다. 세 분의 명예로운 은퇴는 세 분만을 위해 좋은 일이 아니다. 역사의 평가야 보다 훗날의 일이겠지만 한 시대 지도자의 명예로운 은퇴는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멀지 않은 우리 헌정사를 돌아보면 아직 명예롭게 은퇴했다고 할 만한 지도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것은 굴곡진 우리 현대사를 웅변하는 것이고 국민의 비극이기도 하다.
▼'음모론'의 알몸▼
JP는 총선시민연대의 은퇴 권고에 대해 “세상이 뭐 이러냐” 했다고 한다. 하기야 시민연대가 은퇴 권고 사유로 39년 전의 5·16군사쿠데타까지 끌어댄 것은 당사자로서는 심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더라도 JP는 ‘달라진 세상’ 탓을 하기보다는 ‘명예로운 은퇴’를 위해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고 말하는 편이 듣기에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남은 일에 대해 국민이 정 내켜하지 않으면 그때는 물러나야겠지라고 말했으면 보다 나았을 것이다. 내각제만 해도 그렇다. 대통령 1인에게 엄청난 권력이 집중되는 대통령중심제의 폐해를 생각한다면 내각제에 대해 고개를 저을 일만은 아니다. 문제는 국민의 뜻이다. 국민 다수가 싫다고 하면 안되는 것이다. JP가 ‘내각제만이 살 길’이고 그것을 이루는 것이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무엇을 위한 내각제인가’에 대해 보다 명쾌하게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진정 나라와 국민을 위한 내각제인가, 행여 그 자신과 특정정파의 살아남기를 위한 것은 아닌가. 결코 후자가 아니라는 것을 국민 다수가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내각제 문제의 아킬레스건이다.
그렇다고 DJ가 내각제 문제에서 쉽사리 발을 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민연대의 일로 폭발했다고는 하지만 공동여당간 갈등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바닥에는 두 정파간 불신이 도사리고 있다. 불신을 씌웠던 옷을 벗기자 ‘음모론’의 알몸이 드러난 것이다. 사실 97년 대선에서 DJP가 내각제를 약속하고 제휴했을 때 그것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야당이 반대하고 국민 다수가 대통령중심제를 선호한다는 외적조건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권력의 속성상 쉽지 않으리란 것쯤은 알 수 있었고, 그것은 어쩌면 약속 당사자인 DJP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내각제란 애초부터 언제라도 끊어질 수 있는 ‘정략의 끈’이었을 수도 있다. DJ는 민주당 강령에서 내각제를 빼고도 내각제 약속은 아직 살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식이어서는 불신의 골이 낮아지기 어렵다. 국정을 책임진 공동여당의 신뢰 없는 공조(共助)는 갈등의 재생산으로 이어지고 그 폐해는 국민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갈라서는 게 낫다.
▼엉뚱한 대결구도?▼
여권의 한 인사는 이렇게 우려한다. “이렇게 가다가는 4월 총선이 결국 시민단체 대 지역주의의 대결구도로 귀결될 것이다.” 시민단체의 운동이 국민적 지지를 얻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지역주의 이데올로기는 강고하다.
표면적 여론과 실제 투표행위에서 보이는 ‘이중성의 함정’도 무시하기 어렵다. 특정지역에 기반을 둔 정치인들이 시민단체의 운동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시대는 분명 달라졌다. 상당수 정치인들이 퇴출당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으로 정치가 온전히 개혁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DJT 세 분이 해야 할 남은 일은 자명하지 않은가. ‘명예로운 은퇴’를 위하여.
<전진우 논설위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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