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라의 미각시대]프랑스 퓨전푸드 바람

  • 입력 2000년 1월 27일 18시 30분


궁중 귀족과 왕의 전유물로 일반 서민들은 감히 넘겨다 볼 수 없었던 프랑스의 궁중 요리는 프랑스 혁명과 함께 귀족이 몰락하면서 마침내 서민에게 공개됐다. 일자리를 잃은 궁중 요리사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거리로 나와 식당을 열기 시작한 것.

프랑스 요리가 예술적인 섬세함 정교함을 지닌 이유를 여기서 볼 수 있다. 언어 뿐 아니라 자국 음식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한 나라다.

그런 프랑스에 요즘 퓨전요리 바람이 불고 있다. 1970년대 초반 형식적이고 복잡한 코스를 간소화하고 버터의 사용량을 줄인 ‘누벨 퀴진’이 시초지만 미식가 프랑스인들에게 이는 ‘변태음식’으로 비쳤을 뿐. 다양한 민족의 이민자들이 내놓은 퓨전음식이 1970∼90년대 미국을 풍미할 때도 ‘우리 것’만 고집했던 그들은 정보통신의 발달로 세계가 ‘동시생활권’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비로소 ‘혀’를 개방한 듯하다.

요즘 프랑스에서 인기가 있는 퓨전요리는 전통 프랑스식에 일본이나 인도식 조리법을 더한 것.

파리 샹제리제 거리 바로 옆 골목, 조르쥬 5-30번가에 위치한 퓨전식당 ‘아시안’은 지하에서 1층까지 대나무들, 대형 족자등으로 실내를 장식했다. 기초가 튼튼히 잡힌 프랑스의 조리법에 일식 인도식 식자재가 빈틈 없이 접목돼 나온다.

주 요리는 ‘게살 넣은 볶음밥을 곁들인 레드 카레 소스의 오리 가슴살요리’. 프랑스인에게 익숙한 오리고기를 카레 소스와 아우른 속에서 오리고기의 느끼함이라든가, 카레의 설 매운맛같이 두 나라를 구분지을 만한 맛은 전혀 느낄 수 없다. 다시 분리가 가능한 ‘물리적 결합’이 아닌, 합쳐 놓은 뒤에는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화학적 결합’이랄까.

국내의 퓨전레스토랑 중에서는 ‘빠진’과 ‘쿡’을 추천한다. 두 식당은 단순히 동서양의 음식을 섞어 놓은 차원을 넘어 가히 ‘화학적 결합’에 성공했다고 할만한 곳. 그 밖에 ‘시안’은 품위있는 분위기와 정교한 와인리스트가 있는 등 독특한 개성을 갖추고 있다.

송희라(요리평론가) hira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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