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소나티네]日대표감독 기타노의 갱스터 무비

  • 입력 2000년 1월 6일 19시 54분


기타노 다케시, 혹은 비트 다케시. 일본에서는 신랄한 독설을 퍼붓는 코미디언 비트 다케시로 더 유명하지만, 기타노 다케시는 일본영화사를 ‘기타노 이전과 이후’로 가르는 기준이 될만큼, 일체의 영화적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며 현대 일본영화를 대표해온 감독이다.

지난해 국내에 개봉됐던 그의 영화 ‘하나비’에서처럼, ‘소나티네’에서도 바다와 야쿠자,죽음의 이미지들이 계속 등장한다. 근원으로서의 공간인 바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하루하루 삶을 영위하는 야쿠자들, 강한 척 하는 그들의 마음 속 깊이 자리잡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소나티네’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허무를 견뎌내기 위해 폭력에 의존했던 한 사내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영화의 야쿠자들은 사무적인 일을 지루하게 반복하는 월급쟁이처럼 잔인한 폭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사한다. 상납을 하지 않는 술집 주인을 기중기에 매달아 바다에 빠뜨려 익사시켜놓고도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느라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냉혈한인 야쿠자 중간 보스 무라카와(기타노 다케시 분) 일당이 조직의 음모로 오키나와에 고립된 뒤 보여주는 행동은 어처구니 없다. 할 일이 없어진 무라카와는 종이인형을 만들어 놀거나, 해변에 구덩이를 파놓고 부하들이 빠지는 것을 보며 킬킬거린다. 야쿠자들이 아이처럼 노는,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은 자주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다.

폭력과 죽음으로 얼룩진 현실 사이에 여백처럼 끼인 야쿠자들의 짧은 휴가는 이 영화에서 기타노 다케시가 가장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편히 쉴 수 있는 낙원을 꿈꾸는 짧고 달콤한 몽상, 밤 바닷가에서 야쿠자들이 폭죽으로 총싸움 놀이를 하는 장면은 더 할 나위없이 아름답고 순수해 보인다. 그 여운이 길게 남는 탓에, 마지막 결투장면은 소리와 빛의 번뜩임만으로 묘사했지만 그 어떤 갱스터 영화의 결투장면보다 더 비장하다. 18세 이상 관람가. 8일 개봉.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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