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향기]장대송 '수타사 계곡'

  • 입력 1999년 12월 12일 19시 47분


고개 숙이면

수타사 계곡 잔물결이 보인다

물은 빼곡한 숲에서 산수유 피우다가 왔다

물결 사이를 유령처럼 떠도는 치어들

그들은 어디서 왔을까

햇살 닿자 강바닥에 그림자 기어가는 소리

그들은 물 아래 그림자가 낳았다

바람 불면 그림자 보러 가야지

갈 수 없는 강바닥, 물위를 건너는 햇살,

그림자로 자신을 또렷이 만들어낼 줄 아는 부유는 아름답다

바람 불면 그림자 만들러 가야지

―시집 ‘옛날 녹천으로 갔다’(창작과 비평사)에서

가을이 깊을 대로 깊으면 산이 하는 일은 제 몸에 품고 있는 물을 뿜어내는 일이라 한다. 물을 품고 겨울을 나려면 쉽게 얼고 춥디 춥기 때문에 물을 다 토해낸다고 한다. 가을 골짝에 물이 많은 까닭이 거기에 있고 그 물을 일컬어 추수(秋水)라 한다 들었다. 꼭 그 가을 물 앞에 앉아 있는 느낌을 주는 시다. 계곡에 가 본적 오래인데 꼭 계곡에 앉아 있는 것도 같다. 산수유 피던 봄, 진초록의 여름, 만산홍엽의 가을을 다 보내고…. 지금 저 산, 온 몸의 물을 다 퍼낸 바짝 마른 저 산, 긴 겨울을 견디고 있다.

신경숙(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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