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조정옥/괴테가 삶에서 건진 수정같은 잠언들

  • 입력 1999년 12월 3일 19시 15분


▼'즐거운 괴테'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씨앗을 뿌리는 사람 펴냄▼

세상의 초록빛이 서서히 퇴색해 가고 있다. 메마른 겨울을 생각하니 겨우살이를 위해 미리 먹이를 쌓아두는 동물들처럼, 푸른빛을 가슴 가득히 담아두고 싶다. 나무냄새 나는 이른 아침 또는 심야의 고요한 시간에 바하의 첼로곡을 틀어놓고 괴테가 말하는 삶의 지혜를 되새김질해보면 어떨까?

“격렬하게 느껴야 하는 것을 둔하게 느껴서는 안된다” “우리들은 이미 알고 있거나 이해한 것만을 본다” “햇빛을 쬐면 먼지도 빛난다” “친구를 속이느니 친구에게 속는 편이 훨씬 낫다” “인간은 바다와 같다. 각자 다른 이름을 가지지만 결국은 하나로 이어진 소금물이다” “인간을 진정 사랑스러운 존재로 만드는 것은 바로 인간의 무수한 실수들이다”(이쯤해서 녹차 한잔 마시자!)

“사랑이 지성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우리가 젊은 여성을 좋아하는 것은 지성과는 다른 것들 때문이다. 아름다움, 젊음, 귀여움, 사교성, 단점, 변덕….”(괴테의 이 말은 아직도 미혼인 나를 움찔하게 만들었다) “감각은 속이지 않는다. 판단이 속이는 것이다” “무지한 사람과 싸우면 현명한 사람까지도 무지해진다” “인간은 각 연령대별로 일정한 철학을 갖는다. 어린이는 실재론자 청년은 관념론자 장년은 회의론자 노년은 신비주의자….”

이 책에 실린 600여개의 잠언, 시구는 ‘파우스트’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등 괴테의 책 속에 수록된 것 중 간추려낸 것. 괴테의 문학작품 한편한편에 담긴 메시지가 단 한마디로 응축돼 수정처럼 반짝거린다.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정열과 죄악에 대한 넓고 깊은 관용을 문학으로 보여준 괴테, 여든살에도 스무살 처녀를 깊이 사랑한 정열가 괴테…. 그의 시가 그렇듯이 그가 말한 인생과 인간에 대한 진실도 결코 머리에서 짜낸 공허한 지식이 아니라 그 자신의 깊은 체험에서 자연스럽게 터져 나온 것임에 틀림없다.

괴테는 우리에게 세상만물의 상대성과 불가피한 모순을 가르쳐주면서도 동시에 인간의 어리석음, 무분별, 이기심, 악의, 나태를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괴테에 따르면 우리가 삶에서 추구해야 될 가치는 용기, 적극적 활기, 호의, 진심, 총명, 쾌활, 고상함, 창조성 등이다. 괴테의 사상속에서는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철학, 자연의 필연성에 대한 스피노자의 철학, 영혼의 내면 속에 모든 진리가 들어 있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 등을 두루 엿볼 수 있다.

조정옥(철학박사·성균관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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