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명약을 만든 '사이드 이펙트'

  • 입력 1999년 11월 30일 19시 09분


지난해초 일부 언론에선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미국 제약회사 글락소웰컴의 에이즈 치료제 ‘에피비르’를 B형간염 치료제로 속여 팔던 약국들을 적발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오보였다. 이 약은 당시 미국에서 간염치료제로 쓰이고 있었고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간염치료제로 승인받았다.

당초 에이즈치료제로 개발하다가 간염치료에 더 잘 듣자 약의 개발 방향을 바꾼 것.

웬만한 간염환자들은 이름만 들어도 아는 ‘라미부딘’(상품명 제픽스) 얘기다.

선진국에선 요즘 약 개발 과정에서 엉뚱한 효과가 발견돼 원래 목적과는 다른 약을 개발하는 경우가 잦다. 또 이미 떼돈을 벌어준 약에서 다른 효과를 찾으려는 움직임도 거세다.

그래서 요즘 선진국 제약업계의 화두(話頭)는 이렇게 요약된다. ‘사이드 이펙트(Side Effect)를 찾아라.’

★사이드 이펙트

우리말로 부작용(副作用). ‘부작용’하면 보통 구토 두통 등 나쁜 것(Bad Side Effect)을 주로 떠올리지만 넓게는 주목적(主目的) 외의 모든 것 들을 포함한다. 따라서 ‘좋은 부작용(Good Side Effect)’을 눈여겨보면 전혀 생각지도 않은 약을 개발할 수 있다.

★왜 외국에서만 개발되나?

신약의 개발기간은 평균 12년. 막대한 자금력이 필요한데 비해 성공률이 낮아 ‘모래밭에서 바늘 찾는 작업’으로 비유된다.

그러나 개발 중인 신약이나 기존의 약에서 부작용을 발견해 새 약을 개발할 경우 기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이때는 마케팅팀이 다시 시장조사를 하고 연구팀과 ‘전략회의’를 한 다음 방향을 틀게 된다.

우리나라에선 영세한 제약업체들이 ‘단칼 승부’를 시도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부작용이 발견되면 숨기는데 더 신경쓴다.

“신약개발은 오케스트라의 하모니에 비유될 정도로 제약회사와 의사들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한 외국계 제약회사 부장은 “그러나 창의성이 부족한 한국 의사들은 ‘의미있는 부작용’을 흘려넘기는 경우가 많아 신약개발로 이어지지 못한다”고 말했다.

★부작용을 이긴 약

최근 부작용 때문에 폐기됐던 약까지도 다른 효과가 입증돼 재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탈리도마이드. 60년대 임신부의 구토 방지제로 쓰이다가 48개국에서 1만2000여명이 기형아를 낳자 시판 중지됐다.그 러나 지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나병 치료제로 승인했고 에이즈 뇌종양 등에 강력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뉴욕대 메디컬센터의 마이클 글루버박사의 보고에 따르면 성상세포종이라는 뇌종양으로 숨져가던 환자 100여명에게 이 약을 먹인 결과 3분의1은 암세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비롯, 3분의2에게서 효과가 나타났다.

〈이성주기자〉stein33@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