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태정씨의 '눈물 쇼'

  • 입력 1999년 11월 24일 19시 07분


혹시나 옷로비의혹사건의 ‘진실’을 들을 수 있을까 해서 김태정(金泰政)전검찰총장의 입에 관심이 집중됐다. 그러나 그의 어제 기자회견은 진실은커녕 의혹만 더욱 부풀려 놓았다. 문제의 문건 출처에 대해서는 “기억이 안난다. 그러나 사직동팀은 아니다”며 핵심을 피했다. 진실은 감춰 놓은 채 책임을 지겠다는 정도의 무책임한 수사(修辭)만 나열한 대(對)국민 사과성명으로 사건이 적당히 끝내기 수순을 밟게 되리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의혹을 풀어야 할 사람이 오히려 ‘도마뱀꼬리 자르기’식으로 더이상의 진실규명을 가로막고 나선 꼴이 아닐 수 없다.

문건의 출처를 밝히지 않으려면 무엇때문에 기자회견을 자청했는지 우선 묻고 싶다. 국민에 대한 사과는 사건의 진상이 모두 밝혀진 뒤에 해도 늦지 않다. 특별검사팀이 소환하지도 않았는데 느닷없이 특검 사무실에 부인과 함께 나타난 이유가 도무지 석연치 않다. 김전총장이 특별검사에게는 뭐라고 말했는지 알 수 없으나 문건 출처에 대해 분명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면 ‘그러러면 왜 자진출두했느냐’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때문에 그의 출두가 과연 본인의 뜻이냐에 대한 의구심마저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어쨌든 김씨는 아직도 위증과 은폐조작의혹으로 얼룩진 이 사건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그는 부인이 연루된 의혹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이라는 국가요직을 욕되게 하고 이 정권의 도덕성에까지 큰 상처를 입히고도 모자라 이제는 또 국민을 기만하려 하는가. 그의 명예는 법무장관직을 떠날 때 이미 땅에 떨어졌다. 이제 더이상 떨어질 데가 없으니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을 한 것일까. 검사로서 최정상까지 올랐던 사람이 검찰조직의 장래를 추호라도 생각한다면 그래서는 안된다. 또 하나의 ‘눈물 쇼’로 의혹사건을 미봉할 수는 없다.

이제 특검팀은 스스로의 수사능력으로 ‘김태정 뒤에 감춰진 진실’을 파헤칠 수밖에 없게 된 것 같다. 만의 하나 김씨의 특검 사무실 출두에 ‘외적요인’이 작용한 것 같다는 추측이 사실이라면 진상규명은 더욱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옷사건의 진실을 호도하기 위한 모종의 또다른 흑막이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대목을 특별히 주시하고자 한다.

문제의 문건이 어디에서 작성된 것인지, 누가 김전총장에게 전달했는지 등 핵심의혹은 옷로비는 물론 축소은폐의 진상규명을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매듭이다. 끝내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다면 이 정권은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지고 허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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