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규철/남북대화의 '커브볼'

  • 입력 1999년 11월 16일 19시 14분


‘언론대책문서’란 해괴한 문건으로 국내정가가 온통 술렁거리던 지난달말 중국 베이징에선 남북학자들간의 모임이 조용하게 열렸다. 남측 ‘통일포럼’과 북측 ‘사회정치학회’가 공동주최한 ‘제5차 남북해외학자 통일회의’(본보 10월27, 28일자 보도). 기자에겐 지난해 10일간 평양을 방문한데 이어 1년여만에 북측인사들을 다시 만나는 기회였다. 남북당국간의 대화채널이 모두 끊어진 상태에서 학자들 사이지만 지난 5년간 유지돼온 유일한 남북대화의 가교(架橋)라는 점외에도 알아보고 싶은 일들이 많았던 회의다. 금강산관광이 시작된후 첫 회의란 점에서 북측은 방북관광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페리보고서, 미사일문제, 나아가 햇볕정책에 대한 반응을 비롯해 단절된 남북당국대화의 재개가능성 여부도 궁금했다.

◆쟁점의 핵심 찔러

이번 회의가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양측이 우회적인 말을 써왔던 지금까지와 달리 상대의 핵심을 찔렀다는 점이다. 그런 가운데 문답식 ‘커브볼’을 주고 받았다. 실제로 남측이 제기한 북한 형법의 문제점과 북측이 주장한 남한 보안법철폐가 정면으로 부닥치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관심은 ‘북은 변하고 있는가’에 모아졌다.

북측이 회의초 강하게 입장을 표명하고 나선 것도 바로 ‘변화’부분이다. 북측은 한마디로 잘랐다. “우리쪽엔 변화가 있을 수 없다. 우리의 통일의지와 논의는 더 강화될 것이다.” 이틀간 회의에서 북측은 끊임없이 통일의 3대원칙으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을 내세웠다. 조국통일 3대헌장기념탑을 평양에 건립중이라고도 소개했다. 1년전에도 그랬지만 북측인사들은 개혁 개방이란 표현을 싫어했다. 북측은 금강산관광,현대그룹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의 방북 등을 ‘광폭(廣幅)정치, 인덕(人德)정치의 산물’이라고 설명했다. 한 인사는 “남측 사람들이 평양에 오는 길을 열어 준 것은 변화 발전의 의지”라고 말했다. 북측이 던진 첫번째 커브볼이다. 그러면서도 통일논의에서 교류협력이 우선해야 한다는 남측주장에 대해 기능주의가 원칙에 앞설 수 없다고 비판했다. 주한미군문제나 신뢰회복우선 등 구체적 사안에서 남북간의 의견차이는 깊고 컸다. 북측은 남측의 햇볕정책을 계속 비난했고 남북당국자회담에 대해서도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페리보고서에 대해서는 “정세를 새로 평가, 대북접근방식과 수법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미사일문제를 넘겼다고 미국이 우리를 그냥 두겠느냐”고 했다. 남측의 한 참가자는 “이는 북측이 미사일문제 다음은 생화학무기라는 점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북측은 또 “왜 남측을 멀리하고 미국하고만 이야기하려는가”라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모든 분야에서 미국은 뒤에서 남측의 다리를 잡아 당긴다. 그래서 너희가 무어냐, 왜 간섭하느냐고 묻고 따지기 위해 회담을 한다.” 북측이 던진 또다른 커브볼이다. 회의장엔 잠시 웃음이 터졌지만 남측으로선 여러가지로 생각해 볼 대목인 것 같았다.

◆예상판단은 피해야

남북문제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남북양측에 대해 “쉬운 쪽으로만 풀이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싶다. 예상을 바탕으로 한 판단보다는 지난 일을 면밀히 살피는 것이 더효과적이라는뜻이다.‘북한은 개방쪽으로 나갈 것이다’라는 단정은 아직 이르고 헛짚을 수도 있다. 그보다는 ‘아직까지는 U턴의 징후가 없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남북사이의 공통점보다는 무엇이 얼마나 다른가를 분명히 확인하는 것이 통일논의를 위해 필요하다”는 참석학자들의 자세는 솔직했다. 최근의 남북관계를 감안할때 회의후 발표된 ‘남북해외학자통일회의 공동평가서’는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다.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11일 ‘통일회의’를 언급,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더 많은 공통점을 모색할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공동평가서’는 △7·4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의 기본정신에 공감을 표시했고 △적지않은 부분에서 서로의 이견과 차이를 발견, 이를 논의하고 극복해야 할 필요성에 공감했고 △2000년부터는 통일회의를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했다고 밝혔다. 이제 풀이와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남북대화처럼 팽팽하고 커브볼이 많은 대좌일수록 특히 남북당국에 이렇게 주문하고 싶다. “추정하지 말라. 의아해 하지 말라. 한가지에만 골몰하지 말라.”

최규철〈심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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