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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11월 12일 19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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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은 예부터 큰비만 오면 하천이 범람해 물난리가 나고 도성 곳곳에서 배출된 생활하수로 악취가 심했다. 자연히 부자들은 떠나가고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50년대말 청계천 복개공사가 시행된 다음에는 시장과 봉제공장들이 밀집한 장소로 탈바꿈한다. 하지만 그날그날 힘들게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집결지라는 점에서는 달라진 게 없었다.
▽지난 몇년간 이곳에서 일어난 변화는 놀랍기 그지없다. 재래식 시장의 찌들고 때묻은 모습은 사라지고 최첨단 빌딩이 가득한 국내 최대의 의류 시장으로 변한 것이다. 외국 구매자들도 줄을 잇고 있다. 이곳의 성공은 국내외 경영학 교수들에게도 연구 대상이다. IMF체제의 시련속에서도 한국 최대의 ‘히트상품’이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빛과 그늘은 공존하기 마련일까. 주변 뒷골목에 들어서면 패션 상가에 물건을 대는 봉제공장 근로자들이 여전히 비좁은 공간에서 밤늦도록 미싱을 돌리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청계천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70년 11월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절규를 남기고 분신자살한 청년노동자 전태일이다. 청계천의 성공은 전태일과 같은 노동자의 땀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는지 모른다. 전태일기념사업회가 청계천 3∼8가를 ‘전태일 거리’로 명명하자는 운동에 나서고 있다. 20세기를 보내면서 꽤 오랜기간 외면했던 현대사의 한 부분을 복원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어쨌든 전태일 거리와 첨단 패션시장의 공존은 도시의 상반된 두 얼굴을 실감하게 한다.
홍찬식〈논설위원〉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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