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스탠더드]글로벌시대…이중국적 금지냐 허용이냐

  • 입력 1999년 11월 11일 19시 51분


현행 국적법은 대한민국 국적과 외국 국적을 함께 가진 이중 국적을 금지하고 있다.

한국과 달리 이중국적 자체를 허용하는 나라들도 많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은 과거 식민지였던 나라에 거주하는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이중국적을 허용한다. 대만은 세계 각국에 흩어진 화교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스라엘은 유태인의 본국 귀환을 촉진하기 위해 이중국적 제도를 두고 있다. 멕시코는 미국에 거주하는 2000만 자국민이 미국인으로 활동하는데 법률상 제약이 없도록 하기 위해 최근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쪽으로 국적법을 개정했다.

유럽연합(EU)에 가입한 유럽 국가들은 경제적 통합에 이어 앞으로 정치적 통합이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

실질적으로 ‘유럽이 하나’로 되면 국적개념 자체가 의미가 없어져 다른 나라들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해외에 거주하는 동포는 현재 520만명에 이른다. 인구비율로 보면 오히려 화교보다도 많다. 재외동포들은 오래전부터 중국이나 이스라엘 처럼 이중국적을 허용해달라는 호소를 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감정은 아직도 이중국적을 반대하는 쪽이 우세하다.

한나라당 박희태(朴熺太)의원은 김영삼(金泳三)정부 출범 초에 몰아닥친 고위공직자 검증의 시험대에 걸려 법무부장관에 임명된지 일주일만에 낙마했다. 당시 딸의 대학 편법입학 사실이 보도되면서 물의가 일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박의원이 71년 미국 유학중 태어난 딸은 속지주의(屬地主義) 원칙에 따라 미국 시민권을 얻은 뒤 세살 때 귀국해 한국 국적을 취득해 이중국적자가 됐다. 그 딸이 한국 국적을 포기하면서 미국인으로 모 여자대학교에 정원외 특례입학한 사실이 드러나 특권층을 중심으로 한 이중국적 문제가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그러나 최근 들어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시대변화의 추세에 발맞춰 이중국적 문제에 대해 유연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세계화 지구촌화가 더욱 진전될 21세기에는 ‘국민국가(nation state)’의 약화 현상이 촉진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땅도 좁고 자원도 부족한 나라에서 성공한 해외동포의 투자나 해외연구인력 등을 유치하려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현실론이 가세하고 있다.

법무부는 재외동포법이 시행되면 많은 문제가 개선될 것이므로 민감한 이중국적 문제를 굳이 손댈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 독일 일본 중국 등은 원칙적으로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법무부는 이중국적이 ‘국적 유일의 원칙’이라는 세계적인 추세에 맞지 않고 양국가에 대한 국민의 권리의무 충돌 및 외교보호권 충돌의 우려도 있다고 설명한다. 이중국적자가 ‘권리는 내국인, 의무는 외국인’ 식의 기회주의적인 행태를 보이면 이를 제재할 방법이 없어 국민 정서상으로도 용인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중국적이 허용되면 2개국 이상이 관련되는 법률 문제 등에서 어느 나라 법을 적용해야 할지 준거법을 정하기 어려워져 사법관계에 혼란이 생길 수도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한국이 이중국적을 허용하더라도 다른 나라에서 이를 허용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데다 출입국 및 체류관리에도 어려운 점이 많다”는 현실론도 제기한다.

특히 해외 연구인력이나 운동선수 등에 한해 제한적으로 이중국적을 허용하면 평등권위반 문제로 비화돼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이 제기될 수도 있다고 이 관계자는 말했다.

이중국적자는 선천적 사유에 의한 것과 후천적 사유에 의한 것으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박의원의 딸은 혈통주의를 따르는 한국국적 부모의 자녀로서 속지주의 국가인 미국에서 출생한, 선천적인 사유에 의한 것이다.

부모양계 혈통주의 국가인 한국과 일본 사람을 아버지나 어머니로 둔 자녀는 한국과 일본 국적을 동시에 갖게 된다. 통일교 신자들에게 이런 예가 많다.

나라마다 자국 국민이 되는 기준을 △부계혈통주의 △부모양계 혈통주의 △출생지주의 등으로 달리 규정해 선천적 이중국적자의 발생은 불가피하다.

후천적인 사유로는 A국의 국적만을 가진 사람이 B국에 귀화하거나, B국 국민과 결혼해 B국 국적을 취득한 경우로 양국 모두 혹은 B국에서 이중국적을 문제삼지 않을 때 발생한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이중국적자는 원칙적으로 일정 기간내에 하나의 국적을 선택하도록 현행 국적법은 요구하고 있다. 만 20세가 되기 전에 이중국적자가 된 사람은 22세가 되기 전까지, 만 20세가 된 뒤 이중국적자가 된 사람은 그로부터 2년내에 선택할 의무가 있다.

미국은 미성년자(18세 미만)가 시민권을 포기하는 것을 금지한다. 박의원의 딸이 대학입학 전까지 이중국적을 자연스럽게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

캐나다나 남미국가들은 시민권 포기 절차에만 평균 1년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따라서 외국인이 한국국적 취득시 6개월 이내 외국국적 포기의무가 있으나 한시적으로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예외를 인정해 주고 있다.

법무부 곽무근(郭茂根)법무과장은 “해외동포와 해외연구인력의 이중국적 허용 요구는 주로 국내에서 부동산 등 재산취득, 취업의 자유, 장기체류 자격을 얻기 위한 것이 주요 동기”라고 말한다.

각 부문에서 국경선의 개념이 점차 희미해지는 국제화 세계화의 조류를 타고 해외동포를 많이 가진 한국에서 대만이나 이스라엘 처럼 이중국적 문제가 예상보다 빠르게 현실화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최영훈기자〉c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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