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김치의 비밀

  • 입력 1999년 11월 9일 19시 58분


김치의 과학성은 경이롭기 그지없다. 김치는 소금에 절인 배추를 사용하기 때문에 발효 과정에서 염분에 강한 유산균만 살아남고 다른 해로운 균의 증식은 억제된다. 각종 김치 재료에 신비로운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바로 이 유산균 집단이다. 유산균은 김치의 시원한 맛과 독특한 질감을 내주는 한편 비타민을 스스로 합성하기도 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유산균과 김치 재료가 만나 암과 돌연변이를 억제하고 노화를 막아주는 ‘생명물질’을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우리가 김치를 ‘재발견’하게 된 것은 얼마전의 일이다. 외국의 먹을거리들이 몰려오고 맵고 짠 음식에 거부감을 느끼는 신세대들이 늘면서 식탁위의 김치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될 위기에 놓였다. 그러던 김치가 이젠 영양만점의 건강식품으로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우리 먹을 거리를 되찾자’는 신토불이(身土不二)붐의 영향도 있었지만 88년 서울올림픽 이후 김치의 우수성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탓이 크다.

▽채소를 절여 먹는 관습이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까이는 중국의 파오차이, 일본의 쓰케모노, 인도네시아의 아차르가 있고 독일에는 사우어크라우트가 있다. 오이를 절인 서양의 피클도 같은 유형의 음식이다. 그중에서 김치는 맛 영양 등 모든 면에서 단연 돋보인다. 일본이 ‘기무치’라는 이름으로 김치의 일본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한국이 김치 종주국이라는 사실은 누가 뭐래도 확고하다.

▽국내 최초의 김치학과가 청주과학대에 생긴다는 소식이다. 김치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는 있으나 아직도 김치의 비밀은 상당 부분 베일에 가려 있다. 김치를 자랑하는데 그치지 말고 우수성을 학술적으로 밝혀내고 제조기술을 좀더 향상시켜야 한다. 김치의 세계화도 필요하다. 우리 문화유산을 널리 알리는 효과와 더불어 수출을 통한 경제 이익까지 기대할 수 있다. 신설되는 김치학과가 그런 디딤돌의 하나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홍찬식<논설위원〉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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