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곽수일/대우의 좌절이 던진 메시지

  • 입력 1999년 11월 4일 19시 20분


요사이 한국 경제나 기업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 두가지 생각이 든다. 하나는 이제 우리 경제나 기업도 과거의 연장이 미래가 되지 않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바야흐로 우리 경제나 기업의 운영체제는 끝남이 시작된 체제로서 앞으로 2,3년 내에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으로 변화하리라는 것이다.

이같은 좋은 예로서 최근 대우그룹 사태를 들 수 있겠다. 사실 대우그룹 김우중(金宇中) 회장은 60년대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에게는 우상과 같은 존재였다.

경제개발 시대에 누구보다도 위대한 상인(商人)으로 보잘 것 없는 시설에서 만든 썩 좋지도 않은 섬유제품을 세계시장에 내다 팔며 경제발전에 기여하였다. 마치 한국판 콜럼버스와 같이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은 사람으로 세계를 풍미하여 한국 경제발전사에 누구보다 훌륭한 상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이제 한가지 확실한 것은 모든 것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이 무조건 크기만 하면 좋지 않겠냐는 생각도 과거의 것이 되었고, 무조건 규모를 늘리고 확대하는 것이 지상 목표라는 것도 이젠 허황된 것이 되었다. 이제부터는 기본을 다지고 기본을 잘하는 경제나 기업만이 번창할 수 있다는 교훈을 배워야겠다. 이때 기본이란 경제학이나 경영학 교과서의 합리적 이론들이 실무에서 존중되고 실천되는 것을 의미한다.

한 예로 경영학 교과서에 어느 기업이든 부채비율이 150%를 넘게 되면 위험하다고 되어 있다. 만약 대우그룹에서 작년같이 어려운 경제 여건하에서 누구보다 먼저 구조조정을 통하여 부채비율을 낮추었다면 오늘날과 같이 해체되는 비운을 겪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또한 요사이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재벌들의 선단식 경영도 그렇다. 대우그룹 광고를 보면 영어 알파벳 A의 에어플레인(비행기)에서 Z에 해당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열거하고 누구든지 대우와 거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같은 선단식 경영의 결정적 약점은 모든 것을 다하다 보니 어느 하나 제일 잘 하는 것이 없고, 어느 한 부분에서 이익을 내더라도 경쟁력 없는 다른 부문의 손실을 메우는데 사용할 수밖에 없으므로 장기적으로는 어느 한 부문도 경쟁력을 가지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대우그룹도 섬유에서부터 금융업까지 영위하는 선단식 경영이 아니라 일찌감치 자동차나 중공업을 전문화하였다면 오늘과 같은 비운을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재벌들의 구조조정은 재벌 스스로든 또는 정부 정책에 의해서든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대우사태에서 배울 수 있는 또 하나의 교훈은 경제나 기업경영에 합리적 의사결정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새로운 사업을 계획하면서 마케팅 계획과 생산계획이 자금계획과 조화되게끔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집행되었다면 무모한 투자는 있을 수 없게 된다. 우리 기업의 경영에서 이와 같은 합리성이 도입되기 위해서는 기업 지배구조의 개선작업이 지속되어야만 한다. 만약 그룹회장이 스키를 좋아한다고 스키 리조트 사업을 벌이고, 자동차를 좋아해서 자동차 사업을 한다면 이처럼 무모하고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은 없을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는 주식시가 총액이 5000억달러를 넘어서 세계에서 8번째 국가의 국내총생산(GDP)과 버금가는 기업이 되었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단순히 돈이 벌린다고 해서 건설사업이나 자동차 산업을 마구잡이로 벌이지는 않을 것이며 만약 이런 사업들을 한다면 합리적인 분석과 계획이 수립된 연후에 결정이 내려질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 재벌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작업은 오너나 회장 위주가 아닌 합리적 경영이 정착되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하겠다.

한동안 한국 경제에서 김우중회장 같은 분이 한 사람만 더 있다면 발전 속도가 더욱 가속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제 위대한 상인(商人)의 시대는 끝나고 합리성을 가지고 세계에서 경쟁할 수 있는 새로운 모험가 스타일의 기업가 시대가 열리고 있다.

곽수일(서울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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