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私信 3장의 '비밀'

  • 입력 1999년 11월 2일 19시 48분


어제 오후 ‘언론장악 음모’의혹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 세부사항을 놓고 여야(與野)총무가 끝내 등을 돌림으로써 열흘째 계속돼온 정국의 경색국면은 극한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여야가 이렇듯 해결의 실마리를 풀지 못하는 것은 이번 사건의 본질을 보는 여야의 현격한 시각차 때문이다. 여당은 이번 사건의 본질을 야당측의 ‘매수공작’으로 몰아가는 반면 야당은 현정권의 ‘언론장악 시나리오’로 규정한다.

이번 사건의 의혹은 크게 문건의 작성과정과 전달과정에 있다. 전달과정은 이제 거의 밝혀졌다. 평화방송 이도준(李到俊)기자가 국민회의 이종찬부총재 사무실에서 빼내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에게 건넨 것이다. 두 사람간에 지탄받아 마땅한 돈거래가 있었다고 하나 정의원이 이기자에게 돈을 준 시점이 작년말이라면 여당이 주장하듯 당장 ‘매수공작’에 초점을 맞출 일은 아니다. 전달과정에서 남은 문제는 이기자가 처음에 이부총재 사무실에 있던 문건을 복사만했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원본을 가져와 복사한 뒤 원본은 찢어버렸다고 말을 바꾼 점이다. 이는 이기자가 뒤늦게 이부총재측과 말을 맞출 수도 있는 부분이어서 원본의 행방과 관련해 앞뒤 말 어느 쪽이 사실인지 밝혀져야 한다.

보다 핵심적인 사항은 중앙일보 문일현(文日鉉)기자가 이종찬부총재에게 보냈다는 사신(私信) 3장의 행방이다. 이 사신 3장에 이번 문건이 문기자 개인 작품인지, 제삼자의 요청에 따른 ‘주문생산’인지를 밝혀낼 수 있는 ‘비밀’이 담겨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비밀’은 이번 사건의 본질적 의혹을 풀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하다.

문제는 관련자 모두가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부총재측은 사신을 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부총재는 못봤다고 주장한다. 사신과 문건을 따로 철해 놓았는데 몽땅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부총재와 문기자의 관계로 미루어 과연 이부총재가 자신에게 보내온 문기자의 사신과 문건을 못볼 수 있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중국에서 귀국을 미루고 있는 문기자는 사신을 자신의 컴퓨터파일에서 없앴다고 하는데 이 또한 믿기 어렵다. 문기자는 하루빨리 귀국해 사신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

이종찬부총재는 국정원장에서 퇴임할 때 가지고나온 국가기밀문건도 분실했다고 한다. 어떤 문건을 무슨 용도와 목적으로 가지고 나왔으며 분실한 것은 무엇인지 철저히 밝혀야 할 것이나 기밀문건을 분실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부총재는 책임을 져야 한다. 이부총재는 이제 국가 최고 정보기관장을 지낸 집권여당의 부총재로서 진실앞에 보다 솔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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