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살아보니]마이어스/'대충대충 문화' 이젠 그만

  • 입력 1999년 10월 26일 20시 02분


나는 성인기의 대부분인 20여년을 한국에서 살았다. 미국 공군에서는 통역으로, 몇몇 학원에서는 영어 강사, 약 2년 동안은 EBS 교육방송에서 일을 했다. 지금은 한국에서 최초의 외국인 공무원으로 일한다.

어렸을 때 아버지는 “무엇을 하든지 100% 노력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대학에 가라고 강요하지 않았지만 항상 “무엇이 되든지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라”고 말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에 최고가 돼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내가 하는 일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의 ‘대충 대충’ 하는 정신에 대해 화가 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근에 아파트 한 채를 샀다. 내 집을 가져보기는 처음이어서 집을 좀 더 멋있게 꾸며보려고 인테리어를 하기로 했다. 여기저기 모델하우스도 많이 가보고 가격과 일처리를 꼼꼼히 비교해 보았다. 마침내 적당한 가격에 일을 잘 할 것 같은 한 업체를 선정했다. 나는 원하는 벽지와 몰딩 스타일과 색상을 주문했다.

공사가 시작된 며칠 후 현장에 들렀다. 놀랍게도 내가 주문한 몰딩과는 완전히 색상과 디자인이 다른 것을 시공해 놓았다.

공사는 다시 시작되었고 이번에는 두가지 색상을 활용한 투톤의 몰딩으로 해 놓았다. 내가 모델 하우스에서 보고 주문한 것과 비슷한 몰딩을 보기까지 3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했다.

며칠 후 잘 알려진 가구점에 가서 식탁을 주문했다. 배달된 식탁은 어떤 곳에 칠이 돼있지 않았고 다리가 흔들렸다. 전화를 걸어 불평을 하자 공장장이 직접 와서 사과했다.

다음날 다른 식탁이 배달되었는데 처음 것보다 더 좋지 않았다. 그는 내가 너무 까다롭다고 하면서 여기는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며 사람이 하는 일이라 완벽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세 번째로 쓸만한 식탁을 가져다 주었다.

나는 한국음식을 아주 좋아한다. 못 먹는 것이 없을 정도지만 가끔 맛있는 이탈리아 음식, 특히 라자냐가 간절해 질 때가 있다. 그래서 맛좋은 라자냐를 찾으러 이 식당 저 식당을 전전해 봤지만 결과는 언제나 실망이었다.

그러던 중 강남 한 식당에서 라자냐를 찾아냈다. 하얀 모차렐라 치즈가 듬뿍 뿌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 먹음직스러운 치즈 아래는 짤막하게 다져진 스파게티가 있었다. 라자냐 국수는 길고 납작하며, 7㎝ 정도 너비의 면이다. 맛도 모양도 스파게티와는 완전히 다르다. 웨이터에게 라자냐가 아니고 스파게티라고 하자 그는 한국에서 수 없이 들어온 말을 되풀이했다. “우리 집에서는 라자냐가 이렇게 나옵니다.” 나는 “백반을 시켰는데 비빔밥을 내놓고 우리집 백반은 이렇게 나옵니다라고 하면 괜찮습니까”라고 되물었다. 한국에서는 요리사가 요리를 하는데 자부심이 없는 것이고, 손님은 당연히 누려야 할 질과 서비스를 기대하지도 않고 불평하지도 않는다.

한국이 세계에 대해 모르고 경험이 없을 때는 핑계를 댈 수 있었지만 지금의 한국은 다르다. 88올림픽과 아시아 경기를 치렀고 2002년에는 월드컵을 개최할 나라다. 시민들 각자가 하는 일에 자존심과 장인정신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 손님들도 엉터리를 보고 ‘이 정도면 되지 뭐’하면서 넘어갈 때가 아니다.

마이클 제이 마이어스<경기도지사 외교담당 비서관>

약력△60년 미국 뉴욕 출생 △뉴욕주립대 졸업 △80년 주한 미공군 통역사 △98년∼현재 경기도지사 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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