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배인준/떠오르는 일본 核

  • 입력 1999년 10월 20일 18시 29분


도쿄특파원 시절인 94년 1월25일 필자는 인터뷰를 위해 일본 방위청장관실을 방문했다. 아이치 가즈오(愛知和男)장관은 “일본은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핵개발 능력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개발 의사가 없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4개월여 뒤인 그해 6월초 일본 외무성은 ‘핵무기 사용이 국제법상 반드시 위법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일본의 핵무장론이 새 밀레니엄을 눈앞에 두고 드디어 수면 위로 확연하게 떠올랐다. 연립정권 제2여당인 자유당 소속 중의원 의원인 니시무라 신고(西村眞悟·51)방위청정무차관이 그 ‘판도라의 상자’를 활짝 열어젖혔다. 그는 19일 발매된 일본판 ‘플레이보이’ 잡지를 통해 “일본도 핵무장에 관해 국회에서 검토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그는 또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을 지구로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정부는 그의 발언이 큰 파문을 일으키자 20일 그를 경질했다. 각료 등의 과거사 망언이 터져나올 때마다 해임으로 파장 축소를 꾀해 온 수순과 똑같다. 하지만 그같은 경질은 발언 당사자의 정치적 기반을 더 탄탄하게 굳혀주는 ‘훈장’이 되는 게 일본이다. 그리고 그 발언에 담긴 메시지가 점차 현실로 다가서는 게 일본이다. 더구나 일본정계의 여전한 실력자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郎)자유당당수는 “(니시무라 발언이) 개인적 견해인 만큼 야당이 추궁해도 그를 사임시키지 않겠다”고 버티기까지 했다. 사견(私見)이라서가 아니라 오자와 자신의 생각과 같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침략 황군(皇軍)의 체험도 없는 전후(戰後)세대로 변호사출신인 니시무라 같은 사람이 대동아공영권 환상 속에 핵무장론을 제기했다는 사실에서 일본 역사교육의 실체도 읽을 수 있다. 지금도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은 국방비를 쓰는 세계 제1의 무기수입국이 일본이다. 평화헌법 개정논의도 본격화됐고…. 일본은 어디로 가는가.

〈배인준 논설위원〉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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