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천년을 기록한 예술가의 눈 5]

  • 입력 1999년 10월 3일 22시 17분


지난 1000년의 역사를 놓고 보면, 일반 대중이 예술작품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대부분의 예술 작품은 권력을 지닌 자들의 소유였으며 일반대중이 볼 수 있는 예술 작품이라고는 예배당을 장식하고 있는 그림이나 조각품이 전부였다.

지난 1000년의 초창기에 예술이 맡은 첫 번째 임무는 역사의 첫 번째 임무와 똑같았다. 즉, 위대한 사람들에게 찬사를 바치는 것이 그 목적이었던 것이다. 수많은 황제 여왕 귀족 사제 전사들의 초상화와 유명한 전쟁을 표현한 작품들이 그 증거이다.

그러나 예술은 오래 지나지 않아 그 범위를 넓혔다. 화가들은 자신 주위의 세상을 충실하게 기록했고 특히 종교적 테마는 일상생활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예를 들어 중세에 유럽인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먹었는지에 관한 우리의 지식은 대부분 그 시기에 양산된 만찬에 관한 그림에서 얻은 것이다. 역사가인 페르난드 브로델이 지적했듯이 처음으로 포크가 등장한 것은 1599년에 자코포 바사모가 그린 만찬 그림에서였다.

이밖에도 그림들은 초기의 대중문화 속에서 시각적 이미지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알려준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예는 많지 않지만, 시각적 이미지가 사용된 대표적인 경우로는 우선 가게의 간판을 볼 수 있다. 인류 최초의 광고라고 할 수 있는 간판은 주로 그림을 통해 그 가게에서 팔고 있는 물건을 표현했다. 19세기까지는 문맹률이 아주 높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광고는 아주 오래 전부터 사용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옛날에는 광고라고 해야 거리의 행상들이 물건을 사라고 외치는 정도에 불과했다. 서구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최초의 광고 포스터가 인쇄된 것은 1480년의 일이었다. 그리고 17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대도시에 벽보 등이 대량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시각적 이미지가 대중적으로 널리 펴져나가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은 1798년의 석판인쇄술의 발명이었다. 원화를 값싸게 대량으로 인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서구사회에서 18세기말에 일어난 사회적 경제적 대변혁은 예술에도 새로운 역사를 마련해주었다. 많은 예술작품을 소장하고 있던 사람들이 파산하거나 사망했기 때문에, 또는 혁명 때문에 일반사람들이 예술작품을 손쉽게 볼 수 있는 길이 열렸던 것이다. 그것이 현대적 의미의 ‘박물관’의 등장이었다. 실제로 루브르 박물관은 프랑스 혁명 당시 대중이 프랑스 왕가의 소장품을 접수하면서 생겨났다.

이어 일반사람들이 예술품을 접하는 데 더 커다란 기여를 한 것은 사진술의 발명이었다. 요즘은 루브르 박물관을 직접 찾아갈 수 없는 사람도 사진을 통해 루브르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20세기 들어 시각적 이미지는 폭발적으로 일상생활 속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영화가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고 컬러텔레비전 비디오 CD롬 가상현실 등이 속속 선을 보였다.

온갖 이미지들이 혼재하는 가운데 미래의 예술이 어떤 형태를 띠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세상에 등장했을 때, 처음에는 왠지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거슬리는 것처럼 보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예술적 영감을 담은 것처럼 보이게되고, 궁극적으로는 필연으로 여겨지게 되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필자〓루크 산트〈‘증거(Evidence)’ ‘사실의 공장(The Factory of Facts)’의 저자〉

(http://www.nytimes.com/libra

ry/magazine/millennium/m4/sa

nt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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