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인 북]「예술가를 위한 형이상학」

  • 입력 1999년 9월 17일 18시 15분


▼김상환 지음/ 민음사/ 459쪽/ 1만5000원▼

“스스로 동기를 만들어 가지는 행위, 스스로 규칙과 방향을 창출해 가는 행위만이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행위, 자유로운 행위이다. 이에 대한 사례는 예술적 행위 속에 가장 잘 구현되어 있다.… 이런 예술에 대하여 가장 혐오스러운 것은 타성(他性), 즉 외재성이다.”

서양인들이 새로운 사유의 길을 찾아 동쪽으로 올 것이라고 전망하는 저자(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그 길을 앞서갈 동반자로 예술을 택했다. 그 여정은 탈서양과 탈근대의 길이고 대상의 분석으로부터 총체성의 해석으로 가는 ‘복잡성의 사유’의 길이다.

현실에서 진리의 이데아로 향하는 ‘외재적 초월’로부터 현실 안에 있는 진리를 인식하는 ‘내재적 초월’로 가는 길이다.

이 길은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언어로 다다를 수 없는 길이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동양에서는 ‘말로 할 수 없는 영역’으로 경외시해 왔고 서양에서는 ‘신비주의적’이라며 폄하해 왔다. 이 영역에 대한 ‘언어’의 재도전은 ‘탈근대’의 서양에서 다시 시작됐다. 언어의 범위 밖의 것을 언어의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철학자는 시적 언어의 힘을 빌린다. 이 점에서 철학자인 저자가 문학청년시절 가까이 했던 시를 다시 동반자로 삼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저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칸트를 거쳐 하이데거, 데리다, 들뢰즈에 이르기까지 서양철학사의 전개과정을 통하여 사유의 변이를 점검한다.

김우창과 가라타니 고진처럼 우리의 현실과 좀더 가까운 곳에 있는 동행자도 소개한다.

꼼꼼히 읽어나가다 지치면 훌쩍훌쩍 건너 뛰다가 다시 마주치는 책장에서도 사유의 깊이와 지적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김형찬기자·철학박사〉khc@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