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오명철/앙드레 김과 김봉남

  • 입력 1999년 8월 25일 18시 42분


누구에게나 한두 가지 ‘급소’가 있다. 거론되는 것 자체가 거북스럽거나 부끄러워 감추고 싶은 것들이다. 가계나 혈통에 얽힌 문제, 어린시절의 별명, 낯뜨거운 실수담 등이 주로 해당된다. 패션디자이너 앙드레김에게 ‘김봉남’이라는 본명은 그런 ‘급소’ 중 하나일 것이다.

24일 국회 법사위의 옷로비 의혹사건 청문회에서 ‘김봉남’이라는 ‘촌스러운’ 본명이 화제가 되고 그가 입고 나온 흰색의 튀는 옷도 논란이 됐다고 한다.

앙드레김은 이에 앞서 검찰조사에서도 수사관들로부터 “검찰에 조사받으러 오면서도 그런 차림이냐”는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목요상(睦堯相)법사위원장이 앙드레김의 신원을 확인한 것은 ‘국회에서의 증언 감정 등에 관한 법률’의 증인신문절차에 따른 것이긴 하다.

하지만 앙드레김으로 널리 알려진 그에게 굳이 본명을 대도록 한 것이 과연 바람직했느냐는 지적도 있다. 법조문에도 반드시 본명을 대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선비는 호(號)로, 작가는 필명(筆名)으로 부르는 것이 예의이듯 패션디자이너 앙드레김은 ‘앙드레김’으로 부르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

튀는 옷도 마찬가지다. 각종 공연 현장과 외교사절 모임에서 수십차례 앙드레김을 보았지만 늘 ‘그옷’차림이었다. 상가(喪家)에서도 ‘그옷’을 입고 있었다.

패션디자이너가 자신의 ‘작품’을 입고 다니는 것은 법관이 법복을 입고 재판정에 들어서는 것만큼이나 당연하다.

옷로비 의혹사건의 진실 규명과 뛰어난 디자이너에 대한 ‘희화화’는 다른 차원이다.

오명철<문화부>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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