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밀레니엄 베스트]축구

  • 입력 1999년 8월 24일 18시 19분


지난해 여름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에는 10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프랑스의 월드컵 우승을 축하했다. 1944년에 파리가 독일의 점령에서 벗어난 이후 무엇인가를 축하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군중이 파리의 거리로 몰려나온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처음 지난 1000년에 관한 글을 써달라는 의뢰를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른 단어는 ‘유럽’이었다. 그리고 유럽을 대표하는 이미지를 연상했을때 떠오른 말은 ‘유혈’이었다.

유럽은 지난 1000년간 수많은 예술가들과 학자들을 배출했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하기도 했다.

다행히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유럽의 주요 강대국들이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그 나라들이 갑자기 서로를 좋아하게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반드시 칼을 휘두르지 않고도 서로를 미워하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 기적을 일으킨 것이 바로 축구였다.

전설인지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1000년의 역사 중에서 최초로 벌어진 축구경기는 전쟁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서기 1000년경에 영국인들이 자신의 땅을 침략해온 데인족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뒤 이를 축하하기 위해 데인족 족장의 머리를 잘라 그것을 축구공처럼 이용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진위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서기 1100년 무렵에 영국인들이 축구경기를 하면서 참회 화요일(천주교의 축일 중 하나)을 축하했다는 것은 사실로 알려져 있다. 이때는 온 마을 사람들이 경기에나서 한팀의 선수가 500명이나 됐고 정해진 경기 규칙도 없었으며 경기는 하루종일 계속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싸움하듯 경기를 하다보니 혼란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부상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는 바람에 영국의 에드워드 2세는 1314년에 이 경기를 금지해버렸다.

그후 에드워드 3세, 리처드 2세, 헨리 4세도 축구를 더욱 엄격하게 금지했다. 그러나 17세기말에 병사들이 반드시 갖춰야 할 능력 중에서 궁술이 제외되자 찰스 2세는 축구를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그 덕분에 1801년에는 축구의 표준 규칙이 정해졌고 1863년에는 케임브리지대에서 현재와 같은 축구 규칙이 만들어져 축구가 유럽 전역과 전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현대의 국제 축구 경기는 반바지를 입은 대리 군대가 축구 경기장에서 벌이는 전투와 다름없다. 경기가 벌어질 때마다 국가간의 오랜 원한과 적의가 그 주위를 맴돈다. 지난해 여름의 월드컵에서 국기를 흔들고 애국심을 부추기는 노래를 부르며 자국팀을 응원하던 사람들을 보며 필자는 유럽인들이 마침내 전쟁을 대신할 것을 찾아냈다는 것을 절감했다.

▽필자:폴 오스터〓소설 ‘팀북투’의 저자

(http://www.nytimes.com/library/magazine/millennium/m1/auste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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