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이승엽, 그는 누구…

  • 입력 1999년 8월 2일 23시 14분


이승엽은 경북고 졸업반때 투수로 한양대에 스카우트된 선수.그러나 운명은 그에게 대학진학도 투수도 허용치 않았다.

대구에서 건축업을 하던 이춘광(56)씨와 김미자(49)씨 사이에서 2남1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난 이승엽은 ‘공부나 잘하라’는 부모의 반대를 꺾고 중앙초교 4년때 야구에 입문,경상중과 경북고를 거치며 특급스타로 성장했다.

이승엽은 타고난 재능으로 야구선수로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지만 대학진학을 둘러싸고 또 한번 ‘소동’을 벌여야 했다.

고교시절 타자보다는 투수로서 재능을 높이 평가받았던 이승엽은 94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한국팀에 우승컵을 안긴 뒤 삼성의 스카우트 제의를 뿌리치고 한양대에 응시원서를 제출했다.

아들에게 대학 졸업장을 안겨주겠다는 아버지의 뜻이 워낙 완고했다.

그러나 이승엽의 대학진학은 그해 교육부가 신설한 대입요강 ‘체육특기생도수학능력시험에서 40점을 넘어야 한다’는 규정에 걸려 좌절됐다.

결국 한양대를 제 발로 걸어나온 이승엽은 95년초 1억3천만원의 계약금을 받고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삼성은 투수로서의 능력을 높이 사 이승엽을 영입했으나 신체검사 결과 왼쪽 팔꿈치에 뼈조각이 돌아다니는 것으로 판명나 수술이 불가피했다.

수술을 받고 재활트레이닝에 나선 이승엽은 동계훈련중 타격에도 상당한 재질을 보이자 당시 우용득감독과 박승호타격코치가 타자로 나설 것을 권유했다.

팔꿈치가 완쾌될 때까지 방망이를 치겠다던 이승엽은 첫해부터 타율 0.285에 홈런 13개로 고졸선수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뛰어난 타격솜씨를 보인 뒤 이듬 해 3할타자가 됐다.

97년에는 파워가 급격히 향상돼 32홈런과 102타점을 마크,최연소 홈런왕과 최우수선수로 뽑혔다.

지난해 이승엽은 자신의 최고기록인 38홈런을 치고도 홈런왕 타이틀을 타이론 우즈(42개·두산)에게 넘겼지만 실패를 교훈삼아 올시즌 전인미답의 50홈런 고지에 도전하게 됐다.

선천적인 야구재능에 23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침착한 판단력,성실한 자기관리 능력까지 갖춘 이승엽은 앞으로 한국야구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길 것으로 기대된다.

<대구=김상수기자> sso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