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독서]여름휴가때 읽을 만한 책

  • 입력 1999년 7월 16일 19시 05분


《길을 떠난다. 일상의 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쉬기 위해…. 혼자가지 말자. 서류더미, 살림에 파묻혀 지내느라 보지 못했던 책 한 권이라도 길벗으로 챙겨가자. 결재서류와 가계부 항목 읽기에만 익숙해진 나의 머리는 휴식과 영양공급을 원한다. 굳이 어려운 책을 고를 필요는 없다. 일상으로부터 벗어날 여유를 준다면 웃는 것도, 좀 야한 생각에 잠겨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주제별로 휴가기간 중 읽을 만한 책들을 소개한다.》

▨에로스▨

우리네 세상사에 ‘에로스’가 빠질 수 없다. 에로스 하면 우선 서구적인 느낌이 들지만 우리에게도 뜨거운 에로스가 있다. 이름하여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

16세기초에 당대의 제일 ‘야한’ 이야기를 한데 모아놓은 ‘어면순’. 당시 임금님도 이불 속에서 몰래 읽었다고 하는 책이다. 양반과 여종, 사또와 기생, 과부와 사내종을 둘러싼 육담 80여편이 생생하게 펼쳐져 있다. ‘어면순(御眠楯)’(문학세계사)은 ‘잠을 막는 방패’라는 뜻. 이 책으로 한여름 졸음을 물리치시길.

고대 중국에서는 단연 ‘소녀경’이 으뜸. 성을 통해 불로장생을 꿈꾸는 수나라 양제. 그의 명을 받아 성의학을 연구하는 어의(御醫) 양상선. 그가 사람살리는 성의 비방을 실험하고 개발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 소녀경’(문학수첩)도 읽을만하다. 황제의 방중술도 소개한다.

젊은 작가 윤대녕, 전경린의 소설에도 독특한 분위기의 에로티시즘이 들어 있다. 윤대녕의 대표작 ‘천지간’ ‘많은 별들이 한 곳으로 흘러갔다’ 등은 어떤 원죄와도 같은, 남녀간의 내밀한 사랑을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을 탐색한다. 그 에로티시즘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신비와 환상적인 분위기로,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래서 더 에로틱하고 짙은 여운을 남긴다.

전경린의 에로티시즘은 명쾌하다. ‘오후 4시의 정거장’ ‘낯선 물 속 나의 그림자’에서, 그것은 직접적이고 감각적이며 경쾌하다. 빠르게 넘어가는 에로틱 묘사가 한여름 더위를 쫓기에 충분하다.〈이광표기자〉kplee@donga.com

▨생태▨

“맨발로 거닐던 숲길의 감촉이 초야(初夜)의 감촉 같았다.” “흙 냄새를 맡자 눈물이 핑 돌았다.”

‘나무와 숲이 있었네’(학고재)의 저자 전영우교수(국민대 산림자원학과)가 이끄는 ‘아름다운 숲 찾아가기’ 행사에 참여한 70여명의 여성문인들은 그 소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무한 경쟁의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자연에 충실한 새로운 철학을 제시하는 ‘생태 산문’. 저자는 “숲과 나무는 심리적 안정과 정서적 순화, 예술적 감흥과 종교적 감응을 불러 일으키는 문화자원이자 정신자원”이라고 주장한다.

‘월든’과 ‘시민 불복종’으로 잘 알려진 미국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는 150년 전 환경보호와 생태주의를 그의 빛나는 산문에 담았다. 최근 발간된 ‘소로우의 노래’ (강은교 번역, 이레)는 그의 명상과 문학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글 모음집.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28세의 나이에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평생을 살아간 소로는 “집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대가 집을 지을 수 있는 이 넉넉한 별의 품이 없다면…”이라고 나직이 외친다.

‘돌아갈 때가 되면 돌아가는 것이 진보다’(실천문학사)는 옹골진 농사꾼 천규석의 평생을 담은 글.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한창 근대화 바람이 불던 65년 농촌으로 돌아간 그는 고집스럽게 자연이 견딜 수 있는 소규모 유기농법을 지켜왔다.

휴가 때 숲을 찾는다면 조용히 눈을 감고 숲의 소리를 들어보자.

〈전승훈기자〉raphy@donga.com

▨유머▨

더운 여름날 유머를 즐기면서 한 번 크게 웃어보자. 일상생활에 지친 마음이 활력을 얻고 한결 여유로워질 것이다.‘당신의 성공엔 유머가 있다’ (나산출판사)는 삶에 대한 통찰과 지혜를 느끼게 하는가 하면 세태를 풍자하는 유머들을 소개한다.

“지난날을 반성해보니 남은 것이라곤 살았다는 것 뿐이다.”

“모래알처럼 수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이면 당신을 만났을까”―빚쟁이와 마주치면서.

“신문값이 오르고부터 구두쇠영감은 활자 하나 안 빼고 다 읽는다.”

최신 사오정시리즈부터 옛날의 참새시리즈까지 유머들을 망라한 ‘한국시리즈 유머백과―99년판’ (죽림) 등도 나와 있다.

한편 유머를 소재로 한 소설도 잇따른다. 소설가 성석제의 ‘재미나는 인생’(강)에는 배꼽 움켜쥐는 재미있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남자목욕탕은 사람 주눅들게 하는 아수라장이다. 사우나탕에서 뛰어나와 냉탕으로 첨벙 뛰어들면서 물개처럼 헤엄치는 사람, 뛰고 달리고 물장난치는 아이들…. 그런데 한 쪽에 거구의 사내가 고독하게 앉아 몸을 씻고 있고 아무도 그 근처에 가려 하지 않는다. 마치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라도 쳐진 것처럼….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해 가까이 가보았다. 문득 사내의 오른팔에 새겨진 글씨문신을 보게 됐다. ‘참자’. 문신은 왼쪽팔에도 있었다 . ‘착하게 살자’.

소설가 이상운이 최근 펴낸 ‘달마의 앞치마’(하늘연못)도 번득이는 기지와 통찰로 웃음을 자아낸다.

〈윤정국기자〉jkyoon@donga.com

▨과학▨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쉬고 싶다’고 꿈꾸는 도시인들. 그러나 정말로 무인도에 홀로 떨어지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로빈슨크루소 따라잡기’ (뜨인돌)는 거짓말같은 맥가이버식의 무인도 생존담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책. 해외배낭여행길에 오른 대학생 노빈손군. 비행기사고로 무인도에 표류한다. 가진 것이라곤 스위스제 만능칼과 사진기, 허리에 찬 가방정도. 과연 그는 물도 불도 없는 무인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첫 관문은 바닷물을 끓여 식수를 만드는 것.

골치 아파서 과학책은 보기 싫다는 사람이라도 ‘Mr. 퐁 과학에 빠지다’(한울림)는 선입견을 버리고 들춰볼 만하다. 책을 펼치면 한쪽에는 의문에 빠진 Mr. 퐁의 만화가, 다른 한쪽면에는 그 답이 퀴즈형식으로 서술돼 있다.

‘한국과학소설(SF)은 리얼리티가 부족해서…’라고 토를 다는 독자에게는 ‘헤테로(Hetero)’(사계절)의 일독을 권한다. 저자는 서울대 분자생물학과 석사를 마치고 현재 대기업 생명공학연구소에 근무중인 유전공학자 정년철씨. 유전자조작으로 열성인자를 지닌 인간을 제거하려는 우생론자들의 음모를 첨단과학정보로 치밀하게 그려나간다. 과학자가 썼지만 디스토피아적 예견으로 끝맺는 것도 특징.

근무시간 중 심심풀이 인터넷 서핑을금지한다고?휴가기간중내컴퓨터로 괜찮은 인터넷 홈페이지들을 둘러보자. ‘인터넷주소록 베스트2000’(영진출판사)을 나침반으로 삼을 수있다. 게임 오락 문화 교육 등으로 국내외 사이트들을 분류.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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