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은행들 대출세일 경쟁치열…우량中企 금리덤핑

  • 입력 1999년 4월 18일 19시 52분


돈 굴릴 곳을 찾지 못한 은행들이 우량 중소기업 쪽으로 눈을 돌리면서 전례없이 치열한 대출세일 경쟁을 벌이고 있다.

작년 한때 연 15%를 웃돌던 기업 신용대출 금리가 최근엔 최저 7% 초반대까지 떨어졌다. 일부 우량중기의 경우 금리덤핑 조짐마저 보이는 상황.

은행 대출담당자들은 중소기업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대출상품을 소개할 기회를 달라”고 거듭 요청하지만 면담약속을 잡기도 쉽지 않다.

▽은행경쟁이 금리 낮춘다〓18일 현재 은행권의 중소기업 대출 기준금리(프라임레이트)는 연 9.25∼9.75%. 작년 상반기에 평균 10.5%선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그리 많이 떨어진 게 아니다.

그러나 재무구조가 탄탄한 우량 중소기업들은 올해초부터 이보다 1% 포인트 가량 낮은 8%대에 돈을 빌려써왔다.

신한 하나 등 후발은행들이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신규고객 확보(다른은행 고객뺏기)에 적극 나서면서 금리는 더 떨어졌다. 신한은행은 3월 중순부터 대출금리 하한선을 연 7.5% 아래까지 낮췄고 하나은행도 비슷한 이자율을 적용하고 있다.

산업은행도 이달들어 종전 연 8.75%였던 일반원화대출 우대금리를 8.25%로, 연 10.0∼11.2%였던 당좌대월 및 어음할인 등의 기준금리를 7.5∼8.5%로 낮췄다.

금리인하 여력이 없는 기업 한빛 조흥 등 선발은행들은 기존 고객을 지키려 안간힘을 쓰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모습. 기업은행은 전국 3백50여개 지점에 대해 하루에 한곳 이상의 중소기업을 의무적으로 찾아가도록 독려하고 있다.

▽“사장님 만나주세요”〓신한은행 중소기업지원부 정모(鄭模·37)과장의 하루 일과는 중소기업 3,4곳을 직접 찾아가 대출세일을 하고 다음 방문처의 약속일정을 잡는 것.

기업대출 경력 18년째인 정과장은 “10군데 전화를 걸면 3곳 정도는 ‘바쁜데 굳이 만날 필요가 있느냐’는 반응을 보인다”며 “기업이 요즘처럼 고자세를 보이는 것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그는 저금리를 무기로 최근 1년간 80여개 업체를 새로 확보했다고 자랑했다. 대부분 다른 은행의 거래처였던 기업.

은행권에서 돈 떼일 염려가 없는 ‘안전 거래처’로 분류하는 중소기업은 8백여곳 안팎. 은행마다 대출전담팀을 운영하다 보니 한 기업을 놓고 서너개의 은행, 심지어 같은 은행의 본점과 지점 직원이 ‘충돌’하는 현상마저 빚어진다는 후문.

▽기업이 은행경쟁 부추겨〓충남에서 자동차부품업체를 운영하는 S사장은 은행경쟁 덕택에 금리부담이 가벼워졌다.

올해초 주거래은행인 A은행이 적용한 어음할인율은 연 12.5%. 2월초 B은행에서 1%포인트 낮은 할인율을 제의하자 이 사실을 안 A은행이 연 11.5%로 인하했다. 3월에는 B은행이 이보다 1%포인트 낮은 선을 제시했고 A은행의 할인율은 10.5%로 떨어졌다.

신한은행 정과장도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다.

작년말 수도권의 한 기업과 새로 거래를 트면서 당시로는 파격적인 연 8%대 대출금리를 약속했다. 그러나 최근 기업측이 C은행으로부터 연 7%대의 제의를 받은 사실을 은근히 알려와 결국 C은행보다 0.1%포인트 낮은 금리를 적용하기로 했다.

한 선발은행 관계자는 “현재의 금리낮추기는 정상적인 계산으로는 도무지 수익이 맞지 않는 출혈경쟁”이라며 “금리인하 공세가 일부 우량중기에 집중되는 바람에 대다수 중소기업이 소외당하는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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