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학진/「솜방망이」통신위원회

  • 입력 1999년 3월 15일 18시 58분


“미성년자가 부모 몰래 가입한 휴대전화를 해지하면 요금을 돌려준다는 기사를 보고 해지신청을 했더니 이동통신업체들이 ‘그런 일 없다’고 딱 잡아떼는데 어떻게 된 겁니까.”

독자들의 문의전화가 빗발쳐 통신위원회로 알아봤다.

담당국장은 “부모동의서 없이 미성년자를 가입시킨 것 자체가 계약무효이므로 업체들이 가입비용은 물론 요금까지 당장 돌려줘야 한다”는 원칙론만 강조했다.

지시를 이행하지 않는 업체에는 과징금을 물릴 계획이라고 단호하게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업체들은 딴청이다. 통신위원회가 지시를 내린 지 열흘이 지났지만 요금을 돌려주거나 정관을 고친 업체는 한 군데도 없다.

“통신요금을 체납한 미성년자들이 이 조치를 악용할 소지가 있다”며 오히려 통신위원회에 ‘핀잔’을 주는 업체도 있다.

통신위원회를 우습게 보는 현상은 이뿐이 아니다. 지난주에는 이동통신업체들의 ‘무료통화’ 판촉행사가 법정기간을 초과했다며 즉각중지를 지시했지만 말을 듣는 업체는 없었다. 정보통신업계의 ‘검찰’로 불리는 통신위원회의 말에 도대체 권위가 서질 않는다.

이렇게까지 된데는 통신위원회가 자초한 몫이 크다.

미국의 통신위원회(FCC)처럼 엄격하게 권한을 행사하지도 못했고 매번 시기를 놓친 다음에야 시정 지시를 내리거나 조정을 해왔다.

벌이라야 수백만원의 과징금이 고작. 업계가 무서워할 리 없다.

매출액의 3%까지(수백억원 규모) 과징금을 물릴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철퇴’내리기를 오히려 겁내는 눈치다. 통신위원회는 언제까지 ‘솜방망이’에 머물 것인가.

김학진(정보통신부)jean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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