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장원/기름물을 마셔야 하나?

  • 입력 1999년 3월 3일 19시 21분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상수원에 경유를 가득 실은 유조차가 추락한 것이다. 대규모 상수원 옆으로 도로를 낸 것도 잘못이지만 상수원을 보호하는 도로 난간을 그렇게 부실하게 만들어놓은 것은 더 큰 문제이다. 환경단체들은 진작부터 이런 문제를 제기하고 정부에 제도적 행정적 보완책을 꾸준히 촉구했다. 관련 당국은 강건너 불보듯 하다 결국 이런 사고를 당했다.

▼ 정부대책 제자리걸음 ▼

기름이나 유독물질로 말미암은 수질오염 사고가 이번 사건 이전에도 왕왕 터졌다. 지난 3년간 발생한 것만 해도 수십건에 이르고 해마다 증가 추세에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언제나 제자리걸음이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여전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상수원과 인접한 곳에 교량과 도로를 건설한다.

환경부와 유류회사가 체결한 유조차량 우회협약도 지켜지지 않는다. 수질환경보전법에 나오는 ‘상수원 보호를 위한 유류 및 유해화학물질 등 수송차량의 통행제한’ 조항은 전혀 그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건교부나 경찰청 같은 관련부처의 태만도 문제이지만 무엇보다 당국의 물 보전 의지가 약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한국처럼 대규모 단일 상수원을 쓰는 나라에서는 한 번의 사고로 온 나라가 환경재앙에 빠질 수 있다. 팔당호는 수도권의 2천만명이 사용하고 대청호는 중부권의 유일한 젖줄이다. 낙동강과 영산강도 그러하다.

더군다나 한국의 상수원은 지하수가 아닌 지표수 일변도여서 그만큼 외부 위험에 많이 노출돼 있다.

온 국민의 생명줄인 상수원은 환경안보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이때까지는 생물화학적산소요구량(BOD)이 화학적산소요구량(COD)과 같은 상수원의 수질에만 신경을 써왔다.

그래서 상수원보호구역이니 수변구역이니 보안림이니 하면서 지역주민들의 강력한 반발을 무릅쓰고 각종 규제를 했고 할 예정이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정부가 아무리 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도 이런 사고가 한 번만 터지면 국가사회가 큰 혼란상태에 빠지고 만다. 이미 낙동강 페놀 사태에서 쓰라린 경험을 했다.

또 사후약방문 식으로 대책위원회니 뭐니 하면서 졸속 방안을 내놓아서는 안된다.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한 환경단체나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확실한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

첫번째 대책은 당연히 법적 제도적 보완과 실행이다. 둘째는 유해물질 수송시 물리적으로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제반 시설 설치다. 교량에 충격흡수판을 설치하고 수송차량의 탱크를 다중벽으로 만들어야 한다.

▼ 「환경=생명」 인식해야 ▼

사전예방과 함께 사고 발생시 긴급 대응책도 중요하다. 이번 사고에서도 관계당국은 처음부터 허둥거리기만 했지 초기에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다. 환경 선진국에서는 이런 사태에 대비해 미리 모의실험을 한다. 유해물질이 사고로 갑자기 상수원에 유입되었을 때를 예상해 여러 대책을 세워 놓는다.

상수원의 바람 방향이나 유속 수심 등을 고려해 사고가 나면 어떤 식으로 오염물질이 확산되고 어떤 영향을 얼마나 미칠것인지에 대한 사전연구가 충분히 돼 있다. 사고 초기에 피해를 줄이는 과학적인 대응을 하는 것이다.

이번 사고를 단편적으로만 보아서는 안된다. 경제제일주의를 앞세운 정부 정책과 눈앞의 이익만 따지는 기업들의 이번 사고를 불렀다고 할 수 있다. 환경문제를 바라보는 정부와 기업들의 시각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영월 동강댐 건설이나 새만금 간척사업, 국립공원 구역조정, 그린벨트 완화 등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봐야 한다.

얼마전 환경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정부의 환경정책은 낙제점을 받았다. 정부는 우리의 후손까지 생각하는 장기적 안목으로 지속가능한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환경은 국민 복지 및 국가 안보와도 직결된 문제다. 더 이상 국민의 생명권을 담보로 환경을 경시하는 무사안일주의 정책을 펴지 말라고 강력히 촉구하는 바이다. 환경은 안보이다. 물은 생명이다.

장 원(녹색연합 사무총장·대전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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