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파이어니어 3]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 소장

  • 입력 1999년 1월 13일 19시 42분


“돌다리를 서너번 두드려 보고도 못건너는 분이야.”

곰인형처럼 푸근한 인상의 ‘컴퓨터의사’ 안철수씨(安哲秀·37·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 소장). 일명 ‘해커들의 천적’으로 통하는 그를 빗대어 연구소 직원들은 이렇게 말한다. 안소장은 이미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 몇 안되는 컴퓨터바이러스 분야의 대가.

‘뭔가에 미치면 통째로 알기 전엔 그만 두지 못한다’는 그는 “나의 장점이자 단점이 바로 완벽주의”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부산고 졸업후 서울로 유학온 그는 밤낮없이 공부만 해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서울대 의대생 시절 컴퓨터와 처음 만났다. 대다수 사람이 워드프로세서를 쓸 정도 배우고 시들하는 컴퓨터에 그는 끼니도 자주 거르고 잠도 일주일에 평균 10시간으로 줄여가며 몰입했단다.

그의 완벽주의는 ‘바둑’에서도 잘 나타난다. 의대생 시절 정신수양에 좋다는 얘기를 듣고는 바둑서적을 50여권 독파한 다음에야 바둑돌을 처음 잡았다. 그리고 1년만에 아마추어 2단 실력을 쌓았지만 결국 컴퓨터에 빠져 이렇다할 내기바둑 한번 둬보지 못했다.

“바둑을 좀 일찍 배웠으면 이창호처럼 될 수 있었는데…”

기초부터 꼼꼼하게 닦아야 직성이 풀리는 기질이 발동, 그는 결국 서울대 의대 박사학위까지 따고 만다. 그렇지만 독학으로 배운 컴퓨터의 매력과 악성 바이러스를 유포하는 해커들과 싸우기 위해 의학박사 학위를 고스란히 집에다 모셔놨다.

올 3월이면 회사 창립 4주년을 맞는 그의 경영방식은 매우 특이하다.

우선 회사에 빚이 없다. 벤처캐피털이건 은행빚이건 단 한 푼도 밖에서 꾸지 않았다.매출도 그리 큰 것은 아니지만 작년에 26억원을 올려 4년동안 연평균 100%씩 초고속으로 성장해왔다.

순이익도 꽤 많은 편. 안소장이 늘 “돈을 가만히 두는 건 순전히 내 실수다. 뭔가 해야하는데…”라며 조급해할 만큼 상당액수의 현금이 은행에 고스란히 쌓여있다.

이름있는 벤처기업이면 누구나 코스닥(장외주식시장)에 등록하려고 혈안이지만 안소장은 “2000년쯤 가서 상장하려고요. 서둘러서 뭐합니까.기술개발이 우선이죠”라며 한술 더 뜬다.

지난해 12월12일 그의 회사는 서울 서초동에서 강남역 부근으로 옮겼다.

“한층짜리 사무실에서 나와 두층을 쓰게 됐다”고 마냥 좋아하는 그는 ‘컴퓨터 의사’‘해커들의 천적’이라는 닉네임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부산에 있는 아버지 안영모씨(69·범천의원 원장의사)에게 사무실 이전을 알리고 ‘택일’까지 자문받았다. 아버지가 정해준 날에 이사한 그는 컴퓨터가 가득쌓인 밀림같은 사무실에 돼지머리를 올려놓고 40명의 직원들과 함께 정성껏 고사를 지냈다.

“IMF귀신 물러가고 경제가 부흥되게 해주십시오.” “정보시대 가로막는 바이러스 귀신은 썩 물러가라.” “안연구소가 세계 제일의 ‘바이러스킬러’가 되도록 하늘님께 빕니다.”

IMF한파 탓에 강남 한복판에 비교적 값싸게 임대했다고 자랑하는 안소장은 벌써 1년여전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바이러스백신전문업체 맥아피사의 ‘1천만달러짜리 유혹’을 깡그리 잊어버린 듯하다.

당시 맥아피의 라슨회장으로부터 V3를 팔라는 제의를 받자마자 “항상 변하는 컴퓨터가 좋다”며 가뿐이 거절할 만큼 배포가 크지만 4년간 직원들과 더불어 일해 얻은 새 사무실만큼은 ‘보물’처럼 소중해 한다.

“모아놓은 돈과 기술력으로 세계 백신시장을 정복할 겁니다.”

안연구소는 불법복제까지 포함해 국내 백신 소프트웨어시장 95%를 정복한데 이어 작년말 중국어판 V3를 선보이고 대륙 정복의 첫발을 내디뎠다.

올해는 일본어판을 내놓고 2000년에는 미국 시장에 입성하겠다는 야심이다. 안연구소는 국내에서 신종 바이러스가 등장하면 24시간 내에 백신을 개발해낼 만큼 기술력에선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직원 40명중 20여명이 백신개발 멤버다.

안소장은 이제 세상에 알려진 ‘컴퓨터마니아’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벤처사업가’로 변신하는데 혼신을 다하고 있다.

그가 사는 가락동 집에는 벌써 40여권의 경영서적이 책상에 쌓여있다. 새 사무실 입주 때부터 유승삼(柳承三)벤처테크사장(전 한국마이크로소프트사장)을 초대해 전 직원과 함께 경영컨설팅도 받고 있다.

“솔직히 두려워요. 컴퓨터야 잘못 만지면 고장날 뿐이지만 회사를 잘못 경영해 부도를 내면 ‘금융사범’이 되잖아요.”

그의 완벽주의가 또 꿈틀거리고 있다. 안연구소 설립후 2년간 미국을 오가며 펜실바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영공학석사(테크노MBA) 학위를 받을 만큼 경영이론공부에도 열심이다.

가업을 이어받기 위해 의사가 되려고 했던 그의 꿈은 결국 가족들이 다 이뤘다. 부산에서 남동생은 한의사, 여동생의 남편은 치과의사로 일하고 있다. 그가 병원에 가는 일은 이발하기 위해 삼성서울병원 구내이발소를 찾는 때뿐이다. 캠퍼스커플로 만난 아내 김미경씨(金美暻·36)도 삼성서울병원 진단병리과 의사.

안소장은 아내에게 늘 존대말로 대한다. 그의 존대말‘병’은 그뿐이 아니다. 아랫직원이나 학교후배들에게도 반말을 써본 적이 없다.

딸과 아내에게 종종 요리를 만들어준다는 안소장. 21세기 글로벌 경쟁의 시대가 코앞에 다가왔지만 그는 그저 담담할 뿐이다.

그가 믿는 것은 “남보다 앞서 개발한 신기술은 죽지 않는다”는 사실과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악명을 떨치는 컴퓨터바이러스를 박멸해야 한다”는 사명감 두가지다.

〈김종래기자〉jongrae@donga.com

[안철수는 누구]

△62년 부산출생 △2남1녀중 장남 △부산 동성초등교 중앙중 부산고졸 △86년 서울대 의대졸, 91년 같은 대학에서 전기생리학 전공으로 의학박사 △91∼94년 해군 군의관복무 △95년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 설립 △97년 미국 펜실베니아대 공대 와튼스쿨 경영공학석사 △현재 소프트웨어벤처협의회 회장, 아시아바이러스연구협회 부회장, 정보보호산업협회 부회장,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중 △전자우편cahn@ahnlab.co.kr △주요저서〓‘안철수와 윈도우98’(98년) ‘안철수의 바이러스 예방과 치료’(97년) ‘별난 컴퓨터의사 안철수’(95년)

[나의 한마디]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하자”(대학시절부터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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