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는 세상]뇌성마비 아이 입양 오대수-김덕생 부부

  • 입력 1998년 12월 31일 18시 06분


96년 8월 어느날. 초라한 차림의 중년부인이 경북 의성에서 공무원생활을 하는 남편과 함께 충북 음성 꽃동네를 찾아왔다.

이 부부는 결혼한 지 20년이 됐는데도 아이가 생기지 않아 마음고생을 하다 입양을 결정하게 됐다며 갓난아기를 키워보고 싶다고 했다.

부부의 혈액형에 맞춰 당시 생후 1개월된 상민이가 그들의 품에 안기게 됐다. 부부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돌아갔다.

10개월쯤 뒤. 이들로부터 깜짝 놀랄 소식이 전해졌다. 상민이가 그때까지 엄마 눈을 맞추지 않고 목조차 가누지 못해 검사를 받아본 결과 뇌성마비로 판명됐다는 것이다.

꽃동네 담당수녀는 “기왕이면 정상아를 입양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며 아이를 데려오도록 했다. 얼마 뒤 이 부부는 상민이를 안고 왔다.

꽃동네측은 다른 건강한 아이를 안겨주며 “상민이는 우리가 잘 기를테니 아픔을 잊고 대신 이 아이를 잘 양육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부부는 남은 상민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쉽사리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다음날 중년부인은 새로 데려간 아이를 안고 와 “상민이를 돌려달라”고 애원했다. 자식을 떼어놓았다는 생각에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했고 아무 것도 먹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꽃동네측은 “장애아는 친부모도 기르기 힘들다”며 만류했다.

다음날, 또 그 다음날. 중년부인은 의성에서 차로 네시간 넘게 걸리는 음성까지 매일 꽃동네를 찾아와 수녀들에게 매달렸다.

사흘만에 상민이는 다시 엄마 품에 안겨 돌아갔다. 그날 유난히 많은 비가 내렸다.

상민이를 다시 집으로 데려온 뒤 이 부부는 상민이를 매일 대구에 있는 어린이집에 데려가 물리치료를 받게 했다. 조금 아픈 기색이라도 있으면 안동에 있는 소아과병원까지 다녀온다. 지난해에는 감기에 걸린 상민이를 업고 온 동네 병원을 헤매기도 했다.

이제 상민이는 혼자 침대를 오르내리고 일어서서 보행기를 붙잡고 몇걸음을 뗄 정도로 좋아졌다. “엄마” “아이고”같은 몇마디의 말도 할 줄 안다.

상민이가 동요비디오를 보다 같이 하자며 엄마 아빠의 손을 잡아당길 때면 이 부부는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큰 은총”이라고 고마워한다.

상민엄마는 최근 혼자 책을 사서 공부해 자동차운전면허 학과시험에 합격했다. 상민이에게도 세상구경을 시켜주기 위해서다. 상민이를 위해서라면 컴퓨터공부라도 할 작정이다. 상민이에게 잘해주려면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에 평생 안먹던 보약도 지어먹었다.

상민이의 부모는 경북 의성군 의성읍사무소에서 기능직으로 일하는 오대수(吳大洙·52)씨와 부인 김덕생(金德生·49)씨.

김씨는 상민이를 꽃동네에 다시 데리고 갔을 때와 현재의 심경을 이렇게 말한다.

“내 살점을 도려낸들 그렇게 아팠을까예. 그때 지은 죄를 생각하면 저는 평생을 가슴에 응어리가 져서 살 수밖에 없을 기라예. 지금은 나를 필요로 하는 상민이가 있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행복한 지 모릅니더. 상민이는 하느님이 보내주신 천사라예. 엄마 아빠가 나이가 많은 기 항상 미안할 뿐이지예.”

〈의성〓이철희기자〉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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