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선대인/성탄전야 축복의 재회

  • 입력 1998년 12월 25일 20시 21분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저녁.

이찬배(李粲培·38·서울 용산구 용산2가동)씨는 집을 나서 회사로 향했다. 설레고 들뜬 기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1년9개월만의 ‘출근’이었다.

미8군에 가구와 장식품류 등을 납품하는 임직원 10명의 소규모업체인 ㈜하이만에서 91년부터 영업부장으로 일해왔던 이씨는 지난해 4월초 감기가 낫지 않아 용산구 한남동 순천향병원에 입원했다가 림프종 암 선고를 받았다.

“말기입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치료하십시오. 요즘은 좋은 약이 많으니까….”

지루하고도 악몽같은 투병생활이 시작됐다. 잇따른 수술과 항암치료로 이씨는 한없이 수척해지고 머리카락도 빠졌다. 그런데도 이은만(李殷滿·45)사장은 늘 힘이 되어주었다. 단 하루도 일하지 못한 이씨에게 이사장은 월급과 상여금조로 매월 2백여만원씩을 꼬박꼬박 지급했다.

이사장은 틈나는 대로 이씨를 문병하고 치료비로 5백만원가량을 도와주었다. 치료비 1억여원의 절반 가량을 이사장이 대준 셈. 이씨는 차츰 호전돼 마침내 23일 퇴원했다.

“새해부터 당장 일하겠다”는 이씨의 말에 “서너달 집에서 푹 쉬다 출근하라”던 이사장은 이날 이씨의 쾌유를 기념하는 조촐한 다과회를 마련하고 이씨를 부른 것. 직원들의 우렁찬 박수 속에 사무실에 도착한 이씨에게 이사장이 다가가 두손을 꼭 잡았다. 이씨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창밖에는 싸늘한 겨울바람이 휘몰아쳤지만 ㈜하이만 직원들에게는 여느 때보다 따뜻한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선대인기자〉eod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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